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마케팅 마이오피아(Marketing Myopia): 헨리 포드 그리고 스티브 잡스


젊은 잡스

얼마 전부터 뒤늦게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오랜 기간 동안 삼고 초려 끝에 섭외한 작가답게, 자서전은 읽는 이들을 빠져들게 만듭니다. 정말 찌질한데다, 치사하고, 사기꾼 기질마저 있는 20대 후반의 잡스가 회사 생활을 하며 겪는 일화들을 읽으며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동정심에 짠한 느낌을 가지다가 이내 감탄하게 되죠.


찌질했던 젊은 잡스는 스펙을 갖춘 엔지니어가 아니었습니다. 고교시절에 1년간 전자공학 과외활동을 하긴 했지만, 이공학 학위는 없습니다. 형편에 비추어 어렵게 들어간 값비싼 대학은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 두었고, 이어 취직한 전자회사에 몇 달 다니다가 명상에 심취하여 도 닦으러 인도로 갑니다. 인도 생활을 마치고 키워준 부모조차 못 알아볼 정도의 몰골로 다시 귀국해 전에 다니던 전자회사에 다시 다니면서 집 근처에 위치한 스텐포드 대학교 강의를 몰래 듣습니다. 하지만, 그의 직종은 엔지니어였습니다. 뛰어나지 않았을 뿐이죠. 그리고 그에겐 돈 냄새를 따라 움직이는 영업 기질과, 돈에 관해 진실을 숨길 수 있는 사기꾼 기질이 있었을 뿐, 경영학에 대해서 역시 아는 것이 없었죠.

그러던 그가, 8bit CPU가 달렸던 추억의 컴퓨터 Apple II 를 크게 성공시키며 개인용 컴퓨터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제 잡스는 여전히 찌질하지만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여 곡절 끝에, 그 동안 탁월한 엔지니어였던 공동창업자 워즈니악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기술 부분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전체 프로젝트를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조직과 힘을 갖추게 된 것이죠. 그 결과, 잡스를 우뚝 선 영웅으로 만든 역작 메킨토시가 탄생하게 됩니다.

메킨토시는 원래 잡스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엔지니어 Jef Raskin이 소수 인력으로 꾸려가던 미국 돈 천불 미만의 초저가 개인용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였죠. 당시 개인용 컴퓨터들의 가격을 감안하면 천불이라는 목표 판매가는 현재 우리가 체감하는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이삼십 만원 정도에 불과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느려터진 싸구려 부품을 써야 했고, 힘센 CPU가 필요한 복잡한 그래픽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가격이 최고의 목표였죠. 그렇게 매킨토시 프로젝트는 나름 잘 꾸려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변두리 프로젝트에 리사프로젝트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유령처럼 다가와 거머리처럼 달라 붙습니다. 찌질하죠. 요 얘기는 조금 있다 하겠습니다.

헨리 포드 그리고 모델 T

매킨토시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Jef Raskin가 추구했던 낮은 목표 판매가 정책은 뿌리가 아주 깊고 매우 성공적이었던 마케팅 정책입니다.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가 혁신적인 모델 T (Model T)를 마케팅 때 사용했던 정책이었죠. 모델 T 1908년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1971년까지 6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였습니다. 포드는 이 모델 T를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 미국 돈 500불에 판매합니다. 포드도 라스킨도 수 백 만 대를 팔기 위해서는 꼭 반드시 낮은 가격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라스킨의 이러한 생각을 요약한 것이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한 개인용컴퓨터 (computers-by-the-millions) 라는 표현이고 포드도 동일한 요지의 발언을 했었죠.

여하튼, 모델 T의 낮은 가격은 순수하게 마케팅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 수 백 만 대를 팔 수 있는 가격을 완성차 시장에서 먼저 정해야 한다는 헨리 포드의 마케팅 판단에 따른 것이었죠. 다시 말하면, “모델 T를 조립할 때는 드는 추정 생산비에 적당히 간접비를 얹고 이윤을 계산해 넣는 방식으로 가격이 결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제조원가와 간접비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으로 봤고, 따라서 중요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We have never considered any costs as fixed. Therefore we first reduce the price to the point where we believe more sales will result. Then we go ahead and try to make the prices. We do not bother about the costs. The new price forces the costs down.”
Henry Ford, My Life and Work (Doubleday, 1923)

흔히 사람들은 모델 T 생산에 처음 사용되었던 대량 생산 방식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헨리 포드가 그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실상은 좀 다릅니다. 헨리 포드의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우선 순위가 명백히 존재 했습니다. ,

낮은 목표판매가격 (마케팅) à 저원가 설계 (엔지니어링) à 대량 생산 체제 (생산)

낮은 목표판매가격에 대한 마케팅적 결단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아는 모델 T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대량 생산 체제도 고안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자동차의 폭발적인 보급도 상당 기간 지연되었을 테죠따지고 보면 헨리 포드는 혁신적인 생산 방식의 창시자로서 보다는 뛰어난 마케터로서 더 위대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동의 하시나요?

울보 잡스

다시 찌질한 스티브 잡스 얘기로 돌아 가겠습니다. 거머리처럼 라스킨의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달라 붙은 잡스는 헤게모니 다툼을 벌입니다. 싸구려 부품을 쓴 천 불짜리 컴퓨터로는 자신이 그토록 구현하고 싶어했던 비트맵(bitmap) 기술을 이용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구현할 수 없었지 때문이죠. 이리 저리 잡음을 일으키다 사장 앞에서 라스킨과 끝장 토론을 하죠. 이 토론에서 밀리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잡스의 막강한 지위 앞에서 라스킨은 오래 버틸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떠나야 했죠. 그리고, 라스킨 없는 매킨토시 팀을 잡스는 자신의 방식대로 이끌어 갑니다. 한 천재가 마음껏 뛰놀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찾은 것이죠.

천불 미만의 낮은 목표가격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를 쓰게 하겠다는 라스킨과 조금 더 비싸더라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GUI를 구현하겠다는 잡스. 누가 옳았을까요? 찌질한 천재 잡스 때문에 애플에서 쫓겨난 라스킨은 Cannon으로 자리를 옮겨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그가 꿈꾸었던 기계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 저것 고려하다 보니 천불을 넘긴 가격표가 붙었고 몇 대 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화려하게 $2,495짜리 매킨토시를 출시하죠. 그의 전작 Apple II $1,200 정도였으니,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숫자로 본다면 가격이 두 배가 된 셈입니다.  $1,500이었던 당시 IBM의 개인용 컴퓨터 가격과 비교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잡스의 목표가격은 $1,950정도였는데, "마케팅"을 강조하는 신임 CEO의 논리를 넘지 못했었던 것이죠. 가격 때문이었을까요? 여하튼, IBM PC의 돌풍을 잠재우지 못했지만, 매킨토시는 애플을 애플답게 해 주는 효자 상품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엔지니어였지만, 가격 이외에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했던 라스킨은 지고, 훌륭한 엔지니어는 아니었지만, 가격은 물론 소비자가 "장차 열광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잡스는 이긴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마케팅 마이오피아 (Marketing Myopia: 마케팅 근시안)

모델 T와 매킨토시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포드와 잡스는 결과적으로 뛰어난 마케터였습니다. 포드는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고, 잡스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GUI라는 혁신적인 제품 특성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적 완벽함으로 전에 없던 소비자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이 뛰어난 마케터일 수 있었던 원인을 찾자면 아마도 수 백 개쯤 될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에게 의뢰하면 수 천 페이지에 달하는 리포트를 만들어 줄 수 있을 테죠. 하지만 그 중 하나만 들라면 그들의 초점이 제품이 아닌 소비자와 시장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았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조직했던 것이죠. 앞서 말씀 드렸지만, 그들의 머리에는 소비자와 시장,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마케팅 정책과 목표 그리고 마케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회사의 내부 외부 역량의 최적 조합이라는 우선순위가 명백했다는 것입니다. 마케팅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sell) 것에 앞서 고객의 필요를 충족(meeting customers’ needs) 에 먼저 신경을 쓴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문제에 대해 거꾸로 된 우선 순위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 분들의 머리 속에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잘 만드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그리고, 그런 분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인구가 증가하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면, 소비자의 평균 소득이 증가하면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좀더 잘하기만 하면 우리의 매출은 증가할 것이다.
-      우리가 팔고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는 영원할 것이다. 대체 상품이 출현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      우리 회사는 이미 필요한 만큼 덩치를 키워 놓았고,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계속 규모를 키워 평균 제조 원가를 계속 줄이기만 해도 이윤을 더 크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효율적인 대량 생산 체제는 매우 중요하다.
-      R&D를 잘 하는 것이 우리 회사를 확실히 성장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소위 마케팅 마이오피아 (Marketing Myopia)에 빠져계신 이런 분들을 위해 얼마 전 고인이 되신 Theodore Levitt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는 간단한 참고 사례를 제시합니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인 19세기 시점에서 말 채찍 (buggy whips) 산업을 생각해 보라고 말이죠. 제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21세기를 사시는 여러분의 시각에서 다음의 내용을 판단해 보시죠.
-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신흥 시장도 열리고 있으며, 소득도 크게 증가하고 있어 좋은 말 채찍을 계속 만들면 매출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      말 채찍 수요는 영원하다. 말 채찍 이외의 방법으로 말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우리 회사는 말 채찍 미국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의 낮은 원가를 실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원가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효율적인 말 채찍 대량 생산체제를 갖출 목적으로 생산기술 연구와 시설투자에 매진하고 있다.
-      말 채찍이라고 다 같은 말 채찍이 아니다. 보급형 말 채찍에서부터 특수 용도 말 채찍까지 다양한 제품을 높은 품질로 생산할 수 있도록 말 채찍 소재부터 완제품 조립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R&D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Levitt 교수는 이렇게 일갈합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말 채찍 시장을 정의할 때, 제품 관점에서 말 채찍 시장이라고 정의하는 대신에 소비자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관점에서 대신에 운송(transportation) 시장또는 좀 혁신적으로 에너지 원(energy source)에 대한 촉매(catalyst) 또는 촉진제(stimulant) 시장이라고 정의 했더라면 말 채찍 생산은 결국 접어야 했겠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팬 벨트나 에어 클리너 공급자로 살아 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소비자의 필요와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마케터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회사의 경영자는 반드시 훌륭한 마케터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각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며 수 많은 마케팅 근시안들 사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집행하는 일은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헨리 포드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은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퇴근 후 밤마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낄낄대고 읽으며 이거 완전 쩔어!” (This is shit!) “예술합시다!” (Never compromise!)를 외치는 찌질하지만 영원히 젊은 잡스를 만나보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과 Marketing Myopia, Theodore Levitt, Harvard Business Review, Jul, 2004 을 주로 참고 했습니다.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양적완화 그리고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밴 버냉키 인터체인지

대서양 연안을 따라 미국 동부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대표적인 고속도로가 Interstate 95 입니다. 야자수와 악어가 사는 최남단 플로리다에서 겨울에 춥긴 하지만 세금이 정말 적어 은퇴자들이 랍스터 먹으며 여생을 보내기 좋다는 최북단 메인 주까지 연결되는 긴 도로입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하버드 대학이 있는 보스턴과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을 차례로 만날 수 있습니다. 뉴욕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가 나오죠. 내친 김에 조금 더 달리면 밴 버냉키의 고향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가 나타납니다. 주 경계에서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190 Exit이 나옵니다. 2009년 이 고속도로 출구는 밴 버냉키 인터체인지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지명에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일은 미국서는 그리 낯선 일은 아닙니다만, 상당한 업적과 인기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밴 버냉키는 2008년 불거진 금융위기의 불길을 정말 단기간에 슬기롭게 잡았다는 공을 인정 받았던 것입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유태인 부모 슬하에 태어난 밴 버냉키는 북쪽으로 가 보스턴에서 경제학을 공부합니다. 경제학자가 된 그는 거시, 미시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로 또 경제학 분야의 최고 권위 저널의 편집자로 입지를 굳히다 지금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서 또 공화당원으로서 워싱턴 DC에서 활동합니다. 월스트리트는 항상 그의 입을 주목합니다. 그가 사용한 어휘, 말투는 물론 그의 표정과 눈빛까지도 분석하죠. 그리고 그가 한 말은 모두 거의 즉시 문서로 바뀌어 세상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부럽죠.

대공황 전문가 버냉키

경제학자로서 그는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깊게 연구했습니다. 그는 대공황의 원인을 돈이 경제에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죠.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은행이 대출을 꺼리게 됩니다. 대출이 원활하지 못하니 사업가들이 필요한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어 일자리도 줄어 들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습니다. 그 결과 경기가 더 나빠지게 된다는 것이죠. 이 악순환이 심해지지 않게 하려면 하늘에 높이 뜬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helicopter drop) 방식으로라도 돈을 충분히 공급해서 물건 값이 점점 낮아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나라 경제가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어차피 금으로 바꾸어 주지 않는 화폐(fiat currency)이니 필요할 때 충분히 돈을 찍어서 경제문제를 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 정책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미국 경제에 공급했습니다. 그 결과였을까요. 집값도 폭락을 멈추고 이제는 반등을 준비하는 듯 보였습니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줄었고, 고용도 잘 되는 듯 보였습니다. 올해 여름의 미국 경제 모습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름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공공 부채(public debt) 총액 한도를 다루면서 현재 정치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어려운 경제문제가 제대로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깊은 절망감을 안겨줬습니다. 버냉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또 순조롭게 증가하는 듯 보였던 일자리도 늘지 않게 되면서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지게 되었죠. 여기에 대서양 건너 EU의 재정위기도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데 한 몫 했습니다. 기업도 소비자도 돈을 쓰지 않으니 이자율이 아무리 낮아도, 돈이 아무리 시중에 풀려도 경제는 계속 어렵게 되어 가는 형국입니다.

양적완화의 의미

양적완화정책은 우리 귀에 정말 생소한 이름의 정책이었죠. 여기서 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돈의 양을 의미합니다. 돈을 많이 풀어서, 기업가와 소비자가 은행 창구에서 느끼는 대출의 어려움을 완화해 주겠다는 의미 정도로 새기면 좋겠습니다. 혹은, 움켜 잡은 돈줄을 좀 느슨하게 푼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죠. 어쨌든 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 이름을 가진 정책의 다른 이름은 돈을 공장에서 찍어(printing money) 시중에 푼다는 의미의 발권력(seinorage) 동원입니다. 통상적(conventional)으로 사용되는 재정, 금융통화 경제정책이 다 통하지 않을 때 쓰는 변칙 통화 정책(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이자 사실상 마지막 수단(last resort)입니다. 이정도 말씀 드리면 눈치를 채셨겠지만, 양적완화 정책이 사용되었을 때 우리가 깨달아야만 했던 내용은 1) 경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미 이르렀으며, 2) 이전에 사용해봤던 재정, 통화 정책이 이미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증명 되었고, 3) 양적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안정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정도일 것 같습니다. 이제 양적완화 정책은 끝났고, 짙은 안개가 걷히면서 사물이 점점 뚜렷이 보이는 것처럼, 경제 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께서 보시는 현실은 어떤가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양적완화 정책을 무한정 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이죠.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하면 결국은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최근에 초인플레를 겪은 짐바브웨에서는 “100조 짐바브웨 돈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 화폐까지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외국 돈을 쓰기에 이르죠. 이런 일이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미국에서 벌어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버냉키 자신도 그리 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죠.

그래서 제3차 양적완화 대신, 그는 2013년 중반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도 했고, 이번 에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라는 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시중에 돈을 직접 공급하지는 않지만, 6년에서 30년 사이의 만기를 가지는 장기 국채를 사들이고 단기 국채를 팔아서 장기금리를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국채도 결국 사고 파는 것이고,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값이 정해집니다. 누군가 많은 양을 팔면 값이 떨어지죠.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인 국채의 값과 국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수익율(금리)은 반비례관계에 있습니다. 국채 값이 오르면 수익율은 떨어지고, 국채 값이 내리면 수익율은 올라갑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죠. 현지 미국 단기 국채에 적용되는 금리(수익률)은 이미 0이거나 0에 매우 가깝습니다.  바로 안전자산추구(flight to quality) 성향 때문입니다. 사방이 불안하니 큰 돈을 둘 곳이 미국 국채 외에 없다는 판단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만기 한 달짜리 미국 재무성 채권(treasury bill)은 수익률 0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100불을 미국 정부에다 꿔 주고, 한달 뒤에 단 1센트도 더하지 않은 100불을 받겠다고 거래 하는 것이죠. 정말 이상하지만, 상황이 이 지경이니, 단기 국채를 대량으로 판다고 해서 단기 국채의 금리(수익률)가 오르는 영향은 매우 미미 할 것이고, 판 돈으로 장기 국채를 사들이면 장기 국채 값이 크게 오르고, 수익율(금리)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장기 국채의 수익율이 떨어지면, 미국 소비자들이 집을 살 때 내야 하는 모기지나, 자동차 할부금을 줄일 수 있어 소비를 부추길 수도 있고, 집값을 올릴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죠. 실제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의 장기 금리는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장기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인데요. 어쨌든, 실제로 모기지 금리가 내렸고 수많은 미국인들이 비싼 이자로 계약한 모기지를 싼 이자로 바꾸어 계약하는 일(mortgage refinancing)에 한꺼번에 나서는 바람에 은행 창구가 마비되기도 하고, 임시 전용 창구를 만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모기지 금리가 내리는 것이 경제에 끼치는 좋은 효과를 좋은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는 암울한 현실이 압도한 것이죠. 모지기를 줄여서 약간의 목돈도 만지고, 매 달 지출을 다소 줄일 수 있다 해도, 가장이 안정된 직업(decent job)을 잃으면 집을 은행에 빼앗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입니다.

길은 어디에

1930년대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당시 미국 GDP 20%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미국 정부가 빚을 더 지고, 그 돈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재정정책은 이미 불가능해졌습니다. 금리를 내려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통화 정책도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미국의 기준 금리는 이미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양적완화를 해 보았지만, 2008년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 변칙적인 편법들이 동원되지만, 효과가 클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초초한 사람들은 버냉키에게 돈을 더 찍어내라고 요구합니다. 에너지와 음식가격을 제외한 핵심인플레이션(core inflation) 2% 정도에 불과해서 아직은 인플레이션 걱정할 때가 아니니 제3차 양적완화를 제발 해달라고 애원하죠. 하지만 그들은 핵심인플레이션율이 올 초에는 1.6% 정도였다는 사실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 실물을 소유한 자산가들과 정부를 포함한 빚쟁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동의 절차 없이 돈을 빼앗아 가는 부작용이 있다는 경제 법칙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양적완화 덕에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올랐던 달콤한 추억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버냉키도 버냉키에게 돈을 더 찍어내라고 주문하는 그들도 다 틀렸을지 모릅니다.

2011 Harvard Business Review의 편집 방향은 자본주의 고치기 (fixing the system)입니다. 그들의 우려대로, 만약 기업의 운영 관행이나 정부의 규제 방식 등을 고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가 수정된 후에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점은 이전 글에서 이미 말씀 드렸듯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그 오랜 기간 동안 경제 이론에 근거한 또 다른 양적완화와 변칙 경제 정책들이 난무할지도 모릅니다.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리스 디폴트가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뉴스가 또 나왔군요. 눈 부시게 날씨 좋은 가을 날, 피곤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다음 기사를 읽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The Federal Reserve Take that, Congress In the face of intensifying political assault, the Fed eases again, Sep 24th 2011, The Economist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자본주의는 이젠 “철저히,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끝났을까? – 칼 마르크스, 찰스 디킨스 그리고 마이클 포터


칼 마르크스

지난 주 어느 날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지 중 하나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홈페이지에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글이 올라왔습니다. “마르크스가 옳았을까 (Was Marx Right?)” 라는 제목의 블로그에는 발전한 자본주의(advanced capitalism)는 결국 내부 모순에 의해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2011년 오늘의 경제 현실과 짝을 이루어 실려 있었죠. 마치 부활한 체게바라(Che Guevara)가 그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탐욕스런" 웃음을 지으며 뉴욕 증권거래소(NYSE)의 개장 벨을 울리러 등장한 것 같은 심한 부조화를 느꼈습니다. 저만 그랬을까요? HBR 블로거는 HBR 편집장이 직접 관리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고 HBR의 독자들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잘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 것을 생각하면 그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수없이 달린 댓글들이 이것을 반증하죠.



HBR 블로그의 필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주장을 항목별로 정리합니다.  Immiseration (노동계급의 궁핍화), Crisis (과잉생산위기, 풍요속의 빈곤), Stagnation (기업의 이윤율 저하), Alienation (생산물과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False consciousness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한 허위의식), Commodity fetishism (상품의 물신성) 등이 그것들이죠. 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너무나 흔히 접할 수 있었던 개념들이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찰스 디킨스

이왕 떠난 김에, 시계를 좀 더 과거로 돌려 보겠습니다.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정점으로 향해 가던 1812년 찰스 디킨스(Chrles Dickens)가 태어납니다. 그가 12살이 되던 해, 그의 가족들은 빚을 값지 못한 죄로 감옥에 가게 되죠. 홀로 남겨진 그는 시궁쥐가 우글대는 공장에서 구두 염색공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에 바탕한 작품 중 하나가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입니다. 봉건제의 급격한 해체로 농촌에서 버림받은 농노들은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도시로 향합니다. 그들 중 적당한 직업을 찾지 못한 많은 이들이 부랑자로 도시를 배회하게 됩니다. 영국 여왕은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고자 법률을 재정하고 이들을 구빈원(workhouse)에 수용하죠. 여기서 태어난 올리버는 만 아홉살이 될 무렵 구빈원의 직영 작업장에 노동자로 투입됩니다. 그리고 올리버는 다른 직업을 전전하며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당시 영국에서 아동 노동은 아주 흔했습니다. 18세기 말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에서 수력으로 움직이는 면직 공장(cotton mill) 노동자의 2/3가 미성년자였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3-4세 정도의 아기들이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좁고 기다란 굴뚝 내부를 오르내리며 묵은 검댕을 깔끔하게 떼어내는 청소(chimney sweeping)를 하거나 탄광에서 어른이 들어가기 어려운 좁고 긴 갱도를 왕복하며 짐을 나르는 역할을 하기도 했죠. 게다가 당시 노동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길었고 아동 노동자들이 챙기는 임금은 성인 노동자들의 10%~20%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조건에서 일한 어린이들은 일찍 죽거나 성인이 되어 사람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19세기 벽두부터 아동 노동을 제한하는 여러 법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영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오랜 기간 노동자로 일하는 편이 일찍 죽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동 노동자 고용주들은 처음부터 찬성하지는 않았습니다. 길고 긴 사회적 토론과 합의 과정이 필요했죠. 그렇게 해서 1847년에 이르러서야 성인 및 아동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10시간으로 제한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아동 노동은 영국과 미국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마이클 포터

시계를 다시 2011년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인 마이클 포터는 올해 1월에 공유 가치 (Shared Value)”라는 개념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의 주장은 현재의 단기주의적이고 기업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 추구 노력에 있어 사회적 가치 (societal value)도 함께 고려 되어야 현재 자본주의가 다음 단계로 혁신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윤 추구는 계속 하되, 예전과는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해야 장기적으로 이윤율도 높일 수 있고 속한 지역 사회 속에서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정부의 규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정부의 규제도 공유 가치 추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잘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찰스 디킨스를 통해 살펴 본 것처럼, 마이클 포터의 이 자본주의 위기 극복 처방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포터의 고백대로 그의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상당 수의 사회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겁니다.

포터는 그의 글 속에서 모든 이윤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Not all profit is equal.) 이라고 말하며, 올바른 이윤과 (right profit) 그렇지 못한 이윤이 있다고 주장하죠. 한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이기심(self-interest)만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넘어서, 이제는 모든 기업이 공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치가들이나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정말좋아하지 않는 위험한 발언들이죠. 천하의 포터도 작금의 위기상황이 아니었으면 하기 어려웠을 정도입니다. 참고로, 포터는 공학 학사, 경영학 석사, 경제학 박사 출신입니다.

Has capitalism completely, utterly and totally failed?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는 주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계속 되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모든 매커니즘이 붕괴되었다는 것이죠.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던져준 가장 큰 교훈으로서, 시장정부가 교과서에서 가르쳐진 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앞으로는 작동을 잘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경제학 이론들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으며, 이제는 더 이상 정부가 재정 정책이나 이나 금융 정책을 써서 위기를 지연시키는 것도 어렵다고 봅니다. 기둥이 무너져 내리니까 집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논리죠.

하지만, 많은 분들은 2008년의 위기를 월스트리트의 지나친 탐욕이나 정부의 규제가 완전하지 못해서라고 진단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 화끈하게 시장을 믿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 이들은 2011년 현재의 어려움도 오바마, 버냉키, 메르켈, 트리셰, 후진타오, 쩌우 시아오추언 등이 슬기롭게 잘 대처하면 해결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신문에는 오바마의 부양책,”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 “중국의 이태리 국채 매입설등등이 뉴스로 등장하죠. 이들 대립된 양 극단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역시 아무래도 하루아침에 뭔가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예상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 국채 금리 (수익률)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죠. 대표선수인 10년 만기 미국 재무성 국채 (treasury note)의 수익률이 최저점 경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냥 낮은 수준이 아니라, “역사적 최저점을 계속 깨고 있으니 전에 없던 일이 앞으로 벌어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전에도 한 번 말씀 드렸지만, 우리는 참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말이죠. 그리고, 그 과정이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시대를 읽으며 살아야겠죠. 추석 연휴를 마감하며, 오랜만에 서울에서 썼습니다.

다음 글들을 주로 참고 했습니다.
"Creating Shared Value", Michael E. Porter and Mark R. Kramer, Harvard Business Review 2011
"Was Marx Right?", Umair Haque, HBR Blog Network, Sep., 2011
"Labor's Dwindling Share of the Economy and the Crisis of Advanced Capitalism", Guest Author, Sep. 3rd, 2011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은 애플일까?

이번 주 스티브 잡스가 갑자기 사임했습니다. 모두들 잠시 충격에 빠졌죠그의 사임 이후에도 애플이 계속 애플일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어서 경쟁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주장과 이미 혁신 문화가 기업에 체화 되어서 끄떡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탁월한 전략가(strategist)이자 꿈꾸는 자(visionary)였던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가 앞으로 어찌 다가올까요? 오늘은 "전략"을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시각을 통해서 애플의 미래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전략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

전략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주류의 시각은 전략의 어원 그대로 전략을 장군의 전쟁 기술: art of a general" 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은 전략은 짜야 하는 (formulate)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담당임원과 메니저들이 있고 여러가지 framework을 사용해서 기업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석해 내죠. 그 결과를 놓고 통찰력과 동물적 감각을 더해 전략이 만들어 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략을 짜내는 과정은 주로 전략담당 메니저와 핵심 임원들 몫입니다. 영업부 대리나 과장 따위가 참견할 수 없죠.

일단 전략이 만들어지만, 장군은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일사분란하게 장군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그 결과를 장군께 보고합니다. 장군과 장성급 핵심 지휘부는 보고 내용에 따라, 전략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위한 추가 조치를 만들어 하달합니다. 한 번 전략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지속됩니다. 기업에서의 전략 집행도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접근 방법을 선호하시는 분들은 계량화된 분석을 멋지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Five-Forces 중 하나인 "구매자의 협상력"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로서 "구매자의 가격 민감도"를 채택하고 "구매자의 예산에서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 가격의 비율"로 그것을 계량화 하죠. 그리고 시간과 돈을 들여 비교적 소상히 자료를 조사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좀 더 믿을 만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MBA들이 고용되고, 약간은 우쭐대는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얘기하며 폼나게 전략을 짭니다. 그리고 예전 것은 모두 틀렸으니 이제는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목도 받으면서 연봉도 올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에 말이죠.


전략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전략을 다른 관점에서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전략을 토기장이가 진흙을 녹로 위에 놓고 차츰 차츰 만들어 나가듯이. 또, 앞마당 뜰에 이름 모를 잡초들이 자라 나듯이 전략을 기업의 과거 활동(action)을 통해 자연스레 형성(form)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전략을 짜는(formulate)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역사 속에서 무늬(pattern) 처럼 관찰되는 것이라고 보죠. 실제로 많은 장수 기업들을 장기간 관찰해 본 결과를 봐도 그러하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은 계량적으로 분석하고 멋있는 전략 지도(strategy map)를 만들어 내는 MBA들을 곱게 보시지 않습니다. 그런 MBA들은 현장 지식이 없어서 그 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즉, 사람이 손과 머리로 일을 하는데, 손에서 오는 피드백을 직접 받지 않고서는 제대로된 상황 판단과 대처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토기장이를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MBA들이 만들어낸 소위 전략이라는 것들이 오히려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서 아직은 조직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전략과 혁신의 싹을 짓밟고 조직의 학습 능력을 억제한다는 비판을 합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은 장기간의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축적된 지식과 통찰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손과 머리가 분리될 수 없듯이 현장과 경영자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또 공식화되고 매뉴얼화 된 지식도 중요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암묵지(tacit knowledge)가 매우 중요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영자가 자세히 전부 아는 것, 또, 현장에서 혁신 아이디어, 새로운 전략이 솟아 나오도록 장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죠.


아, 스티브!

스티브 잡스가 위대하게 보여지는 이유는 이 모든 전략 수립 프로세스를 아침에 거울 보며 혼자 해냈다는 것입니다그리고그 전략을 정말 강하게 몰아 붙였습니다. 수 많은 현장 해고와 시제품 폐기가 스티브 잡스 한마디에 이루어졌죠. 해고 당한 사람이나 폐기된 시제품을 수식하는 말, 스티브 당했다(got steved)는 애플 임직원 모두가 아는 유명한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몇 년 만에 탄생한 작품이 아이팟과 아이폰과 아이패드였습니다.

물론 애플의 성공 이면에는 애플 그리고 애플 제품과 사랑에 빠진 소위 극렬 "애플빠"들만을 뽑아, 양처럼 순응하기 보다는 늑대처럼 또 해적처럼 공격하도록 하는 애플의 기업 문화가 있었습니다. 사장이 괴짜니까 직원들도 그래야 한다는 순진한 발상에서 이런 기업문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테죠.

전략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보면, 그 동안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기가 막힌 전략들을 잘 짜냈습니다. Formulate 한 것이죠. 또,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 눈에 보일리가 없는 인쇄회로기판(PCB)가 예쁘지 않다는 점을 트집잡는 디테일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들어오게 했죠. 이런 과정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또 마케터들이 현장에서 몰입하며 수행했습니다. 스티브잡스와 현장과의 간격은 없었습니다. 전략이 현장 활동을 통해 형성(form) 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것이죠.

스티브는 갔습니다. 애플과 완전히 결별한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오래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죠. 스티브의 후계가 팀 쿡은 냉철한 경영자지만, 꿈꾸는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쟁쟁한 CxO들이 앞으로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 낼지 아직까지는 정말 미지수입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스티브의 큰 빈자리를 메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애플이 이 상황에 정말 잘 대응하지 못한다면, 애플은 머지 않아 다시 평범한 회사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입출력과 자료처리를 담당하는 아이패드나 아이폰 같은 디지털 장치 (digital device)들이 점점 덜 중요해져 가고 있고, 그런 장치들을 들고 다니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죠.

지금 애플은 스티브의 빈 자리를 좋은 전략을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로 계속 채워나가야 하는 큰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잘 될까요?


주로 참고한 글들입니다.
Michael E. Porter, “The Five Competitive Forces That Shape Strategy”, Harvard Business Review, 1979
Henry Mintzberg, “Crafting Strategy”,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1987
Robert S. Kaplan and David P. Norton, “Mastering the Management System”, Harvard Business Review, 2008



2011년 8월 21일 일요일

벤치마킹 교과서가 서점에서 사라진 이유 - 토요타와 소니의 몰락 - 이건희, 구본무의 컴백

얼마 전, 직장에서 벤치마킹을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경쟁사 벤치마킹이었죠. 벤치마킹이란 말 너무 흔하게 들어 보았고, 저 스스로도 자주 써 봤지만, 막상 보고서를 꾸미려니 막막했습니다. 서점을 찾았지만 "벤치마킹"으로 검색되는 책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어렵게 아마존에서 책을 몇 권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표지가 누렇게 변한 1990년대 초반에 인쇄된 책을 보면서 참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왜?

잠시 여러분들의 그리움이 향하는 70~80년 대로 떠나 보겠습니다. 당시 일본은 막강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부터는 모든 경영대학원에선 일본 기업들을 가르쳤습니다. 일본 기업 따라하기가 유행이였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즉, 경영 컨설턴트의 배를 불려 주었던 기법들은 다양했습니다. 잠시 추억을 되살려 볼까요.

  Total Quality Management
  Benchmarking
  Time-Based Competition
  Outsourcing
  Partnering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Change management

당시 대기업 사무실 벽에는 회의 시간 1분당 비용이 직급별로 표시가 되기도 했었고, 불량률을 전사적 노력으로 완벽에 가깝게 낮추려는 Six Sigma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노력을 계속 하면 세계 1등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살았었습니다. 암튼 그땐 그랬습니다.

벤치마킹은 1989년 Xerox 사에서 다른 회사의 모범 경영 방식 (best practice)를 배우기 위해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급속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른 기법에 비해 결론을 내고 보고서를 쓰고 또 경영진을 설득하기가 엄청나게 편했다는 점이 아마도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도 LG 전자에서는 "삼성전자에서도 이미 한다더라"라는 말이 최종 결정을 이끌어 내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본 따라하기 시류의 한 복판에서 1996년 한 40대 학자가 외칩니다. 일본 기업은 전략을 모른다. 그리고 뿌리 깊은 문화적 문제로 전략이 좌우하는 시대에 심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 분이 바로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효율적 운영(OE: operational effectiveness)과 전략(strategy)를 명확히 구분해 냈습니다. 그리고, 왜  OE 만으로는 경쟁자들을 계속 따돌리면서 좀 더 높은 수익을 누릴 수 없는지를 명쾌하게 논증합니다. 그리고, 약간은 빈정거리듯이 말합니다.

  "일본기업은 앞으로 전략 공부를 해야만  할꺼야."
  "Japanese companies will have to learn strategy."

이어 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일본은 지나치게(notoriously) 합의(consensus)를 지향한다. 게다가 일본 기업들은 사람 마다의 차이를 드러내서 아름답게 활용(accentuate)하기 보다는 차이를 없애(mediate) 버린다."

즉, "전략은 어떤 것을 어떻게 할지" 또는 "어떤 것을 안할 지" 대한 단호한 선택의 문제인데, 일본인들의 문화가 이런 단호한 선택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는 OE는 계속 추구해야 하지만, 전략이 더 핵심적이라고 못박죠. 그리고, 서점에서는 벤치마킹 책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 순간에 촌스러워진거죠. 하지만, 아직도 벤치마킹 기법은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의 선언은 적중했습니다. 소니는 몰락의 길을 이미 걷고 있고, 토요타도 휘청거리죠. 수 많은 일본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반면, 오너 회장의 과감한 결단 하에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한국 기업들은 그 동안 사다리를 꾸준히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 괴짜 스티브가 아침에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결정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만 했던 애플은 시총 세계 1위가 되었죠. 바로 2011년 8월에 즉 이번 달에 말이죠.

얼마 전, 한 미국 저자가 쓴 책에 소개된 구글의 안드로이드 인수 비사가 큰 화재였죠. 안드로이드 설립자가 한국을 찾아와 삼성의 본부장과 회의를 했답니다. 지금은 연세대에 계시는 문제의 그 본부장이 들어와 착석할 때까지 삼성 맨들은 벽에 도열해 있다 착석합니다. 그리고, 본부장께서 말씀하시죠. 당신회사 직원이 8명 뿐이네요. ... OS를 만들어 공짜로 뿌리자는 안드로이드 사장의 말은 어찌 되었을까요? ...

지금 애플의 거대한 성공은 이미 수년 전 부터 "플랫폼 전략"을 기초로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되어 많은 경영대학원에서 비교적 소상히 강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한국 학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죠. 따라서, 삼성이나 엘지 같은 거대 기업집단이 그런 흐름을 몰랐을리 만무합니다. 매년 수천명의 MBA들이 입사하는 회사들이니 신입사원들에게 물어 봐도 알 수 있었겠죠. 하지만, 삼성과 LG는 플랫폼 전략을 아직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합니다. 제때 결정을 못내린 것이죠. 결정 내릴 수 있는 식견있는 리더도 없었구요.

포터 교수의 일본 문화 비판을 작금의 삼성, 엘지의 위험한 상황을 그대로 적용해 보면 이건희 회장과 구본무 회장이 왜 또 다시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실 껍니다. 그리고 한국의 기업문화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할 절박할 필요를 느낍니다. 한국의 기업문화가 너무나 일본화(Japanization) 된 것은 아닌지, 활력을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죠.

Japanization은 오늘 현재 "몰락"과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IT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 현재의 KOSPI 성적입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는 겁니다.

"What Is Strategy?" Michael E. Porter, Harvard Business Review, 1996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2011년 8월 15일 월요일

몇 개나 하세요?

몇 개나 하세요?

제 블로그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보신 분들께서는 이 질문이 골프 핸디를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계실테죠. 오늘은 혁신 노력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몇 개나 어떤 범주에서 혁신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따져 보시죠. 그리고, 뿌듯해 하실지 아니면 등에 식은 땀이 나실지는 여러분 몫입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혁신에 관한 주장을 적어 봅니다.

   1.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2. 경영진은 혁신을 위한 "적절한 조직 구조"를 만들어야한다.
   3. 경영진은 혁신을 위하여 충분한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4. 경영진은 혁신을 위한 실험과 학습을 장려하고 실패를 받아 들여야 한다.
   5. 경영진은 스스로 혁신에 직접 몰입해야 한다.

동의하시나요?

좀 더 적겠습니다. 어떤 이는 광기(madness)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똑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바라는 것."


더 잘하지 않고서는 즉, 개선하지 않고서는, 더 나은 결과를 바랄 수 없고, 기존의 했던 방식을 깨뜨리고 새롭게 하지 않으면 즉, 혁신하지 않으면 뛰어날(outstanding)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죠. 점점 더 제품 라이프 사이클이 단축되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절박하게 그 의미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 분기(a quarter)를 앞서가려면 판촉을, 십년(a decade)를 앞서가려면 혁신을"

기업가라면 모두가 동의하실 명언입니다. 혁신의 결과물로 탄생한 어떤 신제품이 어떤 회사를 십년 이상 먹여 살리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이 인용되어 이제는 너무 상투적인 느낌이 들지만, 미워도 다시 한 번 예를 들겠습니다. 혁신의 결과를 탄생한 애플의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가 애플을 세계에서 두 번쨰로 시가총액이 큰 기업으로 만들었죠. 그리고, 애플은 1위 자리를 얼마 전에 잠시나마 차지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별 볼일 없었던 회사를 세계 1등으로 만든 것이죠. 혁신이 선택이 아닌 기업생존에 필수 아이템입니다.


혁신이 중요하다면, 혁신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까요. 많은 회사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 한 기업들을 사들여서 혁신을 이루어 나갑니다. 시스코나 구글 같은 IT 기업들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처럼, 거액의 수업료를 낸 뒤, 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크라이슬러를 되팔았던 사례가 대표적인 예죠. 기업 문화라는 부분까지 통합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기업 내부에서 혁신을 이루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모든 기업 경영자들이바라는 바 입니다. 그러나, 혁신(innovation)이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 막막하고 먹먹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만, 이런 분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혁신을 분류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P&G 입니다.

P&G는 혁신을 체계화(systematization) 하여 2000년대 초반 15%에 불과했던 혁신의 재무적 성공률을 50%대로 높혔습니다. 노다지를 캔 것입니다. 물론 혁신의 체계화가 모든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기초를 튼튼히 다졌죠. 경쟁기업의 연구개발비를 모두 합한 금액보다 더 많은 연구개발비(연 20억 불)를 쓰고 연 4억불을 전 세계 소비자 행동 연구에 사용하여 70%가 넘는 인도인들이 아직도 손빨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기업이 P&G입니다. 그리고, 혁신을 해야만 한다는 그리고 그것이 선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경영진은 물론
종업원의 DNA에 세겨져 있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겁니다.

가슴 아파도, 다 살펴보고 또 다 따라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오늘은 P&G의 혁신 노력 중에 혁신의 체계화의 한 단면을 살짝 보겠습니다. P&G는 혁신을 다음과 같이 네 개의 덩어리로 분류합니다.

   1. Sustaining: "개선"에 해당합니다. 더 좋게, 더 쉽게, 더 싸게 같은 것이죠.

   2. Commercial: 마케팅, 포장, 판촉 등의 혁신입니다. 올림픽 후원 마케팅 같은 것이죠.

   3. Transformational-Sustaining: 이름이 긴 만큼 중요한 개념입니다. 기존의 제품군의 상품 개념을 다시 짜는(reframe) 혁신을 말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에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나 재무적 성과가 크게 증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양치"의 개념에 머물러 있던 치약에 "미백" 개념을 추가하여 치약을 재정의 했죠. 그래서 나온 제품이Crest Whitestrips 입니다.

   4. Disruptive: 전에 없던 제품을 새롭게 만드는 혁신입니다. 아직은 기존 제품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일부 제한적인 영역에서 아주 쉽고, 아주 값싼 기능을 하는 제품입니다. 초기엔 이렇게 낮은 자세로 등장하지만, 기술이 계속 개발되면 나중에는 기존 제품을 몽땅 역사속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일전에 소개 드렸던 유압 굴삭기 (hydraulic excavator)가 그랬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제품 중에는 P&G의 페브리즈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혁신은 1번과 3번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장 혁신의 갯수도 많고 노력도 많이 해야 합니다. 즉, 다수의 혁신은 완전한 진공상태가 아닌 현업(core business)의 토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내부로부터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겠고, 특히 작은 기업의 경우에 모든 구성원이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당위가 성립되겠죠.

이렇게 나누고 보니, 혁신안을 채택할 것인가 기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잣대도 좀 여러 개를 써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1번과 2번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NPV를 사용해도 좋겠지만, 다른 것들에는 리스크를 감안한 리얼 옵션 접근법을 써야 할 것도 같고, 보다 정성적(qualitative)인 평가 방법을 써서 평가 해야 돈이 되는 혁신 아이디어를 사장시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은, 4번의 경우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에 대하여 최소한 매우 관대해야하고, 칭찬해 주어야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노력이 여러분의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중요한 점검 포인트입니다.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기업의 수명을 평균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4번 혁신을 반드시 해야합니다. 예외 없습니다.

맺으며...

뭔가를 분류해 놓으면 참 많은 것을 덤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혁신을 분류해 봤더니, 혁신과 좀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어떤 제도 한 두 개를 도입해서 기업이 혁신에 성공한다면, 대다수 기업들이 수백년의 수명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업군에 따라 수년 혹은 수십년 정도의 평균 수명이 고작입니다. 혁신을 이루어 내는 기업으로 변신하는 일은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작업인 탓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훌륭한 인재가 사장되거나 회사를 떠나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Right people do the right work.)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How P&G Tripled Its Innovation Success Rate, Harvard Business Review, June 2011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2011년 8월 9일 화요일

패닉에 빠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어제까지 코스피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 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투자자들의 희비도 엇갈리죠. 그저께 미국 역시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코스피 지수 일봉 차트, 2011년 8월 9일 장종료, 출처: 다음 증권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S&P의 미국의 국가 신용 등급 강등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은 나라 빚을 그 나라가 약속한 날자에 갚지 못할 가능성을 주목합니다. 돈 떼먹을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신용등급이 낮고 반대의 경우에는 신용등급이 높습니다. 가장 높은 신용등급이 AAA인데, 미국의 신용등급이 딱 한단계 낮아져서 AA+가 되었습니다. 미국이 미국 국채를 산 투자자들의 돈을 떼먹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등급으로 표시한 것이죠.

일반적으로 위험이 증가하면 그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위헙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에 대한 댓가로 생명 수당을 받죠. 마찬가지로 떼먹을 위험이 높은 빚쟁이들에게는 떼먹을 위험이 비례해서 댓가(risk premium)를 요구합니다. 채권의 경우, 위험에 대한 댓가는 높은 이자가 됩니다. 그래서, 똑 같은 금액을 10년동안 스위스에 빌려주는 경우에는 연리 1%를 조금 넘는 수준의 이자를 받지만, 그리스에 빌려 줄 때는 연리 14% 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죠.

따져 보겠습니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낮아졌습니다. 미국 재무성이 발행하는국채를 사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부도 위험에 노출되게 된 것이죠. 사람들은 당연히 추가된 위험에 대한 댓가(risk premium)을 요구하게 됩니다. 국채에 적용되는 이자, 즉, 수익률(yield)는 발행시장에서건 유통시장에서건 올라가야 마땅한 것이죠. 그랬을까요?

미국 재무성 홈페이지로 가 보죠. 아래에 보시는 그림은 어제 뽑은 자료입니다. 지난 주 말에 비해 미국 국채 수익률이 모두 하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 폭락이 시작된 지난 주 초부터 살펴 보면, 지난 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은 속단하긴 이르지만, 부도위험을 경계하는 것 외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재무성 홈페이지, 국채 수익율 표

뭘까?

시장은 아마도 제3차 양적완화나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 경제에 유동성이 공급되어 돈 값, 즉 금리가 계속 낮아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정부와 소비자가 추가 부담할 이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경기가 둔화될 것도 함께 예상했던 것이죠. 이런 요인들은 국채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리스크 프리미엄 보다 더 크게 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증시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 지난 주 초입니다. 이미 큰손들은 빠른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살펴보니 "경기 둔화 전망"와 이에 따른 "이자율 하락 기대"였습니다. 그리고, 채권시장도 똑같은 기대 하에 움직였던 것이죠.

결국,

시장은 계속 "미국 경기 둔화"라는 어젠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미국 국채 시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코스피의 월요일과 화요일 모습은 그러나, 패닉이었죠. 신용등급 강등에 잔뜩 겁먹어 심리적으로 반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미국 증시가 어제 반등에 성공 했습니다. 시장의 예상대로 FOMC는 "유동성 공급" 카드를 꺼냈습니다. 다만, 무척 예외적이었죠. 논란이 될만한 예외적 결정에 대해 쏟아질 질문이 싫었던지, 버냉키는 올 초부터 매달 해 오던 기자 간담회를 오늘 새벽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간담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혔으니까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두렵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주가가 1950선 부근까지 다시 반등한다면 그 선에서 매도하는 것이 어떨가 싶습니다. 미국 경기 둔화라는 어젠다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2011년 7월 2일 토요일

해적, 내적 동기 그리고 작은 성공

유럽 열강들이 범선을 타고 세계 각지로 진출하던 16세기에 부수적으로 생긴 현상이 해적입니다. 해적들은 18세기 초반에 가장 융성해지죠. 해적과 관련된 문제를 하나 풀어 볼까요? 1705년 영국 배가 영국 해적에 의해 나포되었습니다. 해적들은 선원들은 험하게 다뤄온 선장과 간부 선원들을 없애고 선원들에게 해적이 될 것을 종용합니다. 목숨이 달렸으니 선원들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죠. 굳은 얼굴로 마지못해 해적선에 오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본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달랐습니다. 제안을 받은 선원들은 대부분 기꺼이 해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열악한 근무환경, 비상식적으로 고된 노동, 선장과 간부들의 무자비한 폭력 아래로 다시 들어가 고생 끝에 인생을 짧게 마감하느니, 차라리 해적질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아래 인용한 해적 규약의 일부를 보면 선원들의 선택을 더 잘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     모든 선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그것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2.     모든 선원은 전리품 목록에서 공평한 몫을 요구할 수 있다하지만 동료의 보석이나 돈을 한 푼이라도 사취하면 무인도에 내버린다.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사는 게 고생스러울 것이 분명한해변에 하선시킨다.
3.     주사위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된다.
4.     촛불은 밤 8시에 끈다. 이후에 술을 마시고 싶다면 불을 켜지 않고 갑판에 앉아 마셔야 한다.
5.     모든 선원은 즉각 전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늘 각자의 장비, 단검, 권총을 준비해야 한다.
6.     각자 1,000파운드의 저축금을 채울 때까지 현재의 삶의 방식을 계속해야 하고, 그 이전에 이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근무 중에 불구가 된 사람은 공공 기금에서 800 은화를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 받는다.



2009년으로 시간을 옮겨 보겠습니다. Dan Pink의 동기부여에 관한 TED 강연을 들어 볼까요. 그는 직원들의 성과에 인센티브를 미리 걸어 놓고 일을 시키면 오히려 창의성이 떨어지고 생산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분기에 생산량 목표를 달성하면 성과급 50% 준다는 식이죠. 이런 방식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는 경우는 창의성을 요하지 않는 단순 반복 작업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창의성을 높여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인센티브나 채찍과(carrots and sticks) 같은 외적인 동기부여 방법(external motivator)이 아니라 내적인 동기부여 방법(internal motivator)이라고 강조합니다. 종업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까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autonomy)을 부여하는 것, 조금씩 개선을 해 나가면서 점점 더 전문성(mastery)을 더해갈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조직이나 고객 또는 국가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 즉 업무의 목적(purpose)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진들은 7개 기업에서 26개의 서로 다른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238명 명에게 일정한 양식으로 그들의 업무와 감정에 대해 일일 현황를 쓰도록 했습니다. 무려 12,000건에 조금 못 되는 자료가 모였죠.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 역시 직원들을 움직여서 몰입하도록 만들고 창의적으로 일하며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에는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나 조직을 관리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직원들이 자신이 의미 일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그 일 속에서 작은 성공을 자주 맛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관리 원칙(the progress principle)이 중요하며 또 그런 노력을 통해 성과가 나고 그 성과가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선순환 (the progress loop)을 만들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체크리스트를 들고 진행상황을 따지는 (check up)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신나서 일할 수 있도록 관리자가 직원들에게 어려운 일에 도움을 주고(facilitate) 그들과 함께 하는 (check in)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직원들이 마음이 내켜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원칙을 지켜 잘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것이죠.

해적선에 기꺼이 오르는 선원들의 마음, 내적 동기의 중요성 그리고 작은 성공을 통해 동기부여하는 일 -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축은 자율성(autonomy)이고 그 바탕에는 직원들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경영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직원들의 일상 업무에 사사건건 지시하고 입으로만 도와주며 좋지 못한 결과를 직원 탓으로 돌리면서 중요한 정보는 결정적일 때 비장의 무기로 사용하려고 직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그런 매니저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직원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그들 내면의 직장 생활(inner work life)을 생각해 봐야 할 시대입니다.



주로 참고한 자료입니다.
On the surprising science of motivation, Dan Pink, TED International, 2009, www.ted.com
대항해 시대, 주경철, 서울대학교 교육출판문화원
The Power Of Small Wins, Tersa M. Amabile and Steven J. Kramer, Harvard Business Review, May, 2011

2011년 6월 25일 토요일

여러분 회사의 KPI는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윤리문제를 좀 다루겠습니다. 윤리(ethics)는 옳고 그름 (right and wrong)을 가르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 읽으시는 분들 중에 좀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역시 윤리문제는 머리 아픈 무엇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회사 생활과 관련해서 단지 내가 남을 속이거나 도둑질 하지 않으면 된다정도로 윤리문제를 소박하게 생각하고 살죠.
그러나, 회사의 정책을 만들어 내고, 집행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윤리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도입한 어떤 정책이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마음의 갈등 없이 착하게 살게 해 주는 일도 아주 중요한 일 아닐까요? 실제로 기업 윤리에 많은 기업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기업에 있어 비윤리적 행위는 광범위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의도로 새로 도입된 정책이 종업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조장한 사례입니다. 십 수년 전 백화점으로 유명한 시어스 그룹에서 아주 간단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자동차 수리공의 작업시간당 매출액 목표를 $147로 올린 것이죠. 이렇게 구체적인 목표를 수치로 제시하면 목표 달성을 위해 자동차 수리 서비스 부문 종업원들이 수리작업 속도를 높여서 좀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목표는 의도대로 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잡음이 끊이질 않았죠. 영리한 종업원들이 수리비를 과다하게 청구하거나 고장 나지도 않은 부분을 수리했다고 거짓 청구하는 방식을 쓰기 시작한 탓입니다. 치료 내용과 과정에 대해 의사와 환자 간에 아는 것에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이, 수리공과 고객 사이에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정보의 비대칭성 (information asymmetry)을 영리한 수리공들이 악용한 것이죠.

잘못 고안된 목표 (ill-conceived goals)

종업원들에게 조금 어렵고 또 구체적인 목표를 주는 것은 단순히 최선을 다해라라고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어스 사례에서와 같이 단지 생산량을 늘일 것을 종용하는 것과 같은 방법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가 바로 품질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거나 품질관리(QC) 부서에서 꼼꼼히 관리하지 않는 부분을 대충 처리해 버리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도 않고 평소에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부분에서 때로는 대형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회사의 평판에 큰 손상을 입기도 하고, 제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알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런 실패를 면하려면, 경영자들은 종업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정책 도입 전에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종업원들이 비윤리적 행위를 할 동기를 사전에 최소화하고 비윤리적 행위를 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기 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보고하도록 장려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작업자가 어려움을 느끼거나 개선점을 발견해도 그것을 경영층에 말할 경로가 막혀있거나, “말해봐야 소용 없더라는 생각이 박혀 있다면 상황은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회사는 어떠신지요?

장려된 윤리 불감증 (motivated blindness)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불도저 같이 일정을 밀어 붙이는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사장님을 한 번 상상해 보시죠. 어느 날, 품질관리 부서에서 신제품에 사용자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 보고서 집어 던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품 출시 일정이나 챙겨! 가봐!” 보고서 들고 올라갔던 QC 팀장 이제 앞으로 일을 어떤 방향으로 하게 될까요? 1970년대 연료 탱크 폭발 문제로 수 많은 인명사고를 일으킨 Ford의 소형차 Pinto의 출시를 앞두고 똑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장은 그 유명한 Lee Iacocca 입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습니다, 반대되는 정보를 쉽게 간과하면서 말이죠. 이런 심리 현상을 motivated blindness라고 합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지난 금융위기 당시에, 누구도 그 실체를 정확히 몰랐던 MBS CDO심지어 CDO2 같은 파생상품에 미국 국채와 같은 신용등급 “AAA”를 부여한 신용평가회사들 기억 하시나요? 거액의 신용평가 수수료에 눈이 멀어 신용평가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들은 마구 도장을 찍었죠. 우리 주위에서도 사실 이런 사례는 수 없이 많습니다.

단지 종업원들에게 옳은 일을 해라혹은 착하게 살아라라고 종용하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없습니다. 해고되거나 왕따가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행동할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경영자들은 혹시 눈에 쉽게 띄지 않는이해관계 충돌(interest conflict)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보상체계(incentive system) 부분을 잘 따져 봐야 하겠습니다. 엄청난 통찰력과 지혜가 필요한 일인 동시에 그렇게 해야만 기업이 장수한다는 것을 경영자가 절박하게 느껴야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죠.

딱 한번의 유혹 그리고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공직사회 부정부패 문제가 큰 이슈였습니다. 청백리로 상을 받은 어느 강남구청 공무원은 한 인터뷰 기사에서 딱 한번만이라고 생각해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부정부패의 늪으로 빠져드는 동료들을 많이 봤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비윤리적인 행위는 한 번 빠져들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기업 내부에서도 무엇이든 사소한 비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죠. 다만, 연루된 사람을 징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얻은 성과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든 아니면 단지 정말 뛰어난 성과에 도취되어서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얻은 성과에 대해서는 보너스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칭찬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윤리적으로 얻어진 성과에 보상이 따른다는 것은 비윤리적 행위를 조장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관리자들과 경영자들은 결과에 대한 보상 보다는 최선의 결정(quality decision)과 행위에 대해 보상을 해야겠죠. 결과가 좋다면 금상첨화죠.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조건적 성과 지상주의의 폐해나 동기와 과정을 중시하는 보상관행의 혜택이 단기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하신다면 반드시 유념하실 내용입니다. , 외주업체나 비슷한 방법으로 제3자에게 비윤리적인 행위를 떠넘기지는 않는지도 살펴보셔야 하겠습니다.

윤리 만트라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결정과 관련해서 어떤 윤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입에 착 달라붙은 주문(mantra)처럼 말이죠. 그리고 여러분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도록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나 여러분들 종업원들이나 모두 재무적 기준에 치우친 의사결정에 너무나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회사의 장기적 생존확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실천에 옮겨 볼까요? 먼저, 여러분께서 여러분 부하직원들과 함께 정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먼저 살펴보시죠.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셔야죠. “김과장의 KPI에 어떤 윤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여러분 회사의 KPI는 안녕하십니까?

Ethical Breakdowns, Apr., 2011, Harvard Business Review를 주로 참고했습니다.

2011년 6월 13일 월요일

잭 웰치는 왜 틀렸을까?

스테로이드 잘 아시죠. 스테로이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분들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스테로이드는 1930년대 처음 합성 되었을 당시만해도 만병통치약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심각한 부작용도 알려지게 되죠. 많은 양의 스테로이드를 한꺼번에 쓰거나, 너무 오랜 동안 사용하는 경우 장기적으로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크게 낮추며, 고혈압이 생기게 하고 심장 조직 중에서 가장 힘을 많이 쓰는 좌심실의 구조를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젊은 운동선수들의 돌연 죽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간독성이 있어서 간 손상을 일으키고, 심한 여드름을 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테로이드는 치료 효과가 입증된 경우에 한해서 최대한 짧게 쓰는 것이 상식이 되었죠. ,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서부터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 되었고, 이후 도핑테스트는 점점 엄격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스테로이드는 오남용이 심각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스테로이드를 사용함으로써 단기에 볼 수 있는 여러 놀라운 효과에 현혹되어 앞뒤 가리지 않고 사용하게 되는 듯도 하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장기적인 부작용을 말해 주지 않은 채 환자들에게 많은 양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스테로이드의 유혹을 많이 받는 집단이죠. 스테로이드(AAS: anabolic-androgen steroids)를 사용하면 체내 단백질 합성이 빨라지기 때문에 몸이 쉽게 만들어지고 남성화 작용이 있어서 몸의 구조를 변화시키면서 더 많은 힘을 내도록 도와줍니다. 0.01초가 또 홈런 한 방이 승부를 가르고 또 그 결과가 스타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느냐 아니면 쓸쓸히 잊혀지느냐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약물에 의존하려는 마음을 떨치는 것은 운동 선수 자신이나 지도자들이나 참 힘든 일입니다.

스테로이드를 둘러싼 상충관계(trade-off) 관계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기 효과 vs. 장기 부작용

그런데, 정말 소름 돋도록 똑 같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가 기업 경영에도 존재합니다. 바로 주주 가치 극대화와 기업의 장기 성과가 그것입니다. 제가 '소름 돋는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쓴 것은, 스테로이드의 부작용과 주주 가치 극대화의 부작용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고혈압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정말 확실하게 신체의 모든 조직을 손상시킵니다. 간 손상도 앞으로 몸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죠. 다시 말하면, 스테로이드를 남용하면 결국 장기적으로 활력 있는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확실히 불가능해 진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주주 가치 극대화도 남용되기 시작하면 기업이 단기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지 모르지만 기업이 활력 있게 오랜 동안 성장하고 생존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너무나 서로 닮았죠.

주주 가치 극대화의 대표 주자 잭 웰치

주주 가치 극대화(shareholder value maximization)의 개념은 이미 1970년대에 정립되었습니다. 핵심은, 주주들이 가져가는 몫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기업에 좋은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죠. 주주들이 가져가는 몫은 대표적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 오른 만큼의 차익 (capital gain)을 챙기는 것 그리고 기업이 남긴 이익 중 일부를 가져가는 배당(dividend)의 합입니다. 결국, 주주들이 가져가는 몫을 극대화하는 일은 1) 주가를 올리고, 2) 이익을 많이 내며, 3) 배당성향을 높이는 것이 되겠습니다. 별로 나빠 보이지 않은 목표들이죠. 문제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 겁니다. 마치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금지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문제죠. 더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여기서 글의 방향을 좀 정하고 가죠. 수학 공식을 도입하고 목적함수를 최적화하는 미분방정식을 푸는 고통스런 방식 대신에, 주주 가치 극대화의 대표주자 잭 웰치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살펴 보는 편법을 쓰겠습니다.

잭 웰치는 1981 GE 회장으로 취임한 뒤 20년간 회장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의 사업추진은 업계 1위를 하는 사업부만을 남기고 모두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들 1등 사업부들이 해당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도록 몸집을 키우게 하죠, 최고의 인재들을 뽑아 관리를 맡기고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게 하며, 그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하위 10%의 인원들을 매년 회사에서 떠나도록 하는 방식으로 경쟁적인 조직 문화를 유지했습니다. 잭 웰치는 왜 이런 일들을 했을까요? 해당 산업에서 1등 하는 기업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또 그 결과로 지금은 어느 정도의 시장 지배력이 있고 그런 힘으로 더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으며, 목표한 대로 점점 덩치가 커지면 그 시장 지배력도 세지고 또 덩달아 가격 결정력도 크게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사업부의 사업 전망도 그 사업부가 속한 산업의 장기 전망에 큰 틀에서 연동되게 됩니다. 결국 잭 웰치는 앞으로 급속히 커질 산업을 골라 그 산업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획득, 강화하고 독과점적 지위를 통해 높은 마진과 좋은 현금흐름을 지속하겠다는 스마트한 생각을 한 셈입니다. 문제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GE 입장에서는 말이죠. 부침은 있겠지만 산업 성장에 따라 GE의 성장도 계속 될 것이고 산업 전망에 따라 주가는 자연 초과수익을 낼 것이고, 이익도 상대적으로 많이 날 것 같습니다.


결과는 어떠했나요? 잭 웰치의 재임 시기에 GE의 주가는 크게 올랐습니다. 잭 웰치가 취임할 당시 GE의 시가총액은 13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01년 그가 퇴임할 무렵에는 무려 4,840억 달러가 되었습니다. 시가 총액이 20년 동안 거의 40배가 된 것이죠. 기적과 같은 이 실적은 사실, GE가 계속해서 높은 성장률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적의 주인공은 잭 웰치 재임 기간 동안 천문학적으로 커버린 금융서비스 회사 GE Capital 입니다. 잭 웰치가 취임할 당시 유명 무실했던 GE Capital은 잭 웰치가 퇴임할 당시 GE 전체 매출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게 되죠. GE를 은행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듣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잭 웰치가 퇴임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GE 주가는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특히, 2009 GE Capital의 엄청난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난 직후 GE의 시가 총액은 750억불로 곤두박질 친 적도 있었죠. 금융위기 탓도 물론 있었겠지만, 뭔가 예전의 GE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주 가치 극대화의 폐해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작년 보다 좀 더 높은 예상 성장 전망을 올해 시장에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망을 달성해야 하구요. 또 다음 해가 되면 좀 더 높은 성장 전망을 보여줘야 하죠.
그리고 그 순환이 계속됩니다. 문제는 주가가 단순히 이런 요인에 의해서만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식 시장에는 주식 시장 자체의 전망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집단 심리가 작용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간에는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기업이 벌어 들이는 순이익 $1를 평균 주가 $40~$50로 후하게 쳐 주다가도 시장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이 팽배해지면, 순이익 $1을 주가 $20 이하로 박하게 보기도 합니다. , 개별 기업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순이익을 올리고, 향후 전망을 좋게 보이게 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즉, 외부요인에 따라 주가가 크게 떨어질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주가를 높이려면 아무래도 무리수를 쓰게 되는데 GE Capital이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 해 시장에 약속한 실적을 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실적이 항상 계획한 대로 노력한 대로 나올 수는 없는 겁니다. 사람이니까요. 그럼,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도 있어야 하는데, 주주 가치 극대화가 이념이었던 시절에는 '그러려니'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원하지 않는 무능한 CEO로 낙인 찍혀 곧바로 야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죠. 그렇게 내몰린 CEO들은 직원들을 칼 끝으로 몰아 당장 실적을 내도록 종용합니다. 그리고, 인건비 관리비 항목을 절감해서라도 현금흐름을 좋게 하기 위해 사람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장기적인 사업 전망을 좌우할 수 있는 R&D 비용도 정말 '기술적'으로 줄여버렸죠. 눈에 잘 안보이게 그리고 말 안 나오게 말이죠. 결국 이런 CEO들의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회사 실적을 정말 환상적으로 만듭니다. 비용은 계속 줄고, 당기순이익은 폭증하는 겁니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죠.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점점 찾기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당장 돈이 안 되는 혁신 노력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이제 왜 잭 웰치 퇴임 이후 GE 주가가 엉망이 되었는지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같은 시기에 주주들은 행복했을까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 투자자들이 챙겨간 돈을 따져보니, 주주 가치 극대화가 극성을 부렸던 시기에 오히려 투자 수익률이 더 떨어졌습니다. 놀랍죠.

지쳐서 딴 생각을 시작하는 종업원, 원청의 단기 실적을 위해 납품 단가를 깎고 또 깎아 이제는 생존 자체를 위협 당하는 공급자, 돈이 되지 않으면 깨끗이 무시당하거나 홀대 당했던 고객, 금융회사의 단기 실적을 위해 묻지마 투자에 내몰렸던 투자자들, 그들의 소득과 그들이 내는 세금에 의존하는 지역사회, 이윤을 위해서라면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뒷전으로 밀렸던 환경. 이들 이해관계자 모두 주주 가치 극대화 시기에 예외 없이 패배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스테로이드를 남용한 결과, 현역시절 금메달을 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고지혈증, 고혈압, 심장 이상에 간기능장애까지 겪으며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30대 은퇴 선수 같은 모습이랄까요.


당신 회사는?

이전 글에서 언급 드린 바와 같이, 우리 시대 자본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갈 길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흐름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맥락을 떠나 단기 실적만을 강조하면 관련된 모두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온다는 점에 모두들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객을 좀 더 중요시하고, 장기적인 성과에 CEO의 보상을 연동시키는 등의 흐름이 포착되고 있죠.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주가나 당기 순이익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 금기로 되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 회사는 어떠신지요. 여러분 회사의 연간 사업계획 그리고 경영지표를 한 번 찾아 보시죠. 있다면 말이죠. 그리고, 여러분 기업이 아직도 스테로이드에 의존하는 기업인지 아니면 느리지만 운동을 착실히 하고 있는 기업인지 판단해 보실 수 있으실 테죠. 어렵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가치가 그 정도일까요?

노파심에서 사족을 좀 달겠습니다. '배운 사람들이 애용하는 스마트폰,' 블랙베리로 유명한 RIM사에서는 경영진이 자사 주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창업자가 만든 이 규칙을 어기면 전 직원에게 도넛을 사주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가 작았을 때는 규칙을 어긴 사람이 내가 하는 벌금이 크지 않았습니다. 몇 만원 정도였으니 견딜 만했죠. 그러다, 2001년 이 회사 COO가 증권사 컨퍼런스 콜에서 회사 주가를 언급했습니다. 규칙 위반은 위반이니 억울하지만 도넛을 사야 했고, 회사가 급성장한 탓에 무려 800명분의 도넛 값을 물게 되었죠. 수량을 맞추기 위해 도넛 가게에 특별 주문을 해야 했습니다. 상당한 비용을 지출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800명 앞에서 위반자가 된 것이 부담스러워 보였는지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이 규칙을 어긴 사람이 없었답니다. 이 말씀을 굳이 드리는 이유는,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단기 성과주의를 배격하자!"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여러분 회사에서 바뀌는 것이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주주 가치 극대화의 시대에 길들여져 온 우리들이 스스로 바뀌려면 지속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계속 외부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런 교정 작업에는 시간도 비용도 소요될 수 있음을 반드시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테로이드가 치료제로 계속 사용되는 동시에 여전히 남용되는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주주 가치를 적절한 맥락에서 존중하는 것을 병행하며 주주 가치 극대화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꼭 염두에 두셔야 탈이 없을 것 같습니다.

2011년 6월 8일 수요일

갈등 없이 혁신을 이루는 방법이 있을까?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세금이 그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도 다른 이들이 만든 물건과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피해가기 어렵죠. 갈등도 세금과 비슷합니다. 사람이 모여서 서로 의존하며 사는 이상,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무엇입니다. 기업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힘을 모아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예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해도 갈등이 있는 마당에 경영진이 갑자기 혁신을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일면식도 없는 외부 인원들을 갑자기 데려와 혁신팀을 만들어 혁신을 추진한다면 말이죠. 아마도 새로 수혈된 직원과 기존 직원 또 혁신팀과 기존 팀 간에 갈등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갈등이 제대로 통제되고 해소되지 못하면 불신이 싹트고 불신이 자칫 감정의 도화선을 건드리면 모든 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되는 팀간의 전면전(all-out war)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팀간의 전면전 상황에서는 혁신팀의 패하여 핵심 인력들이 떠나서 아마도 더 이상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혁신팀은 신생이고 기존 팀들은 막강하니까요. 그 결과 경영진이 추진하던 그 혁신은 좌절되게 되죠. , 그런 혁신을 시도한 경영진도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답은 물론 없겠지만, 참고할 만한 규칙들이 있습니다.


혁신을 위한 기초 공사

회사 내의 기본 팀들은 이미 잘 구성되어 나름의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편의상 이들 팀들을 기존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들이 회사의 실적을 창출하는 원동력 (performance engine)이라는 것입니다. 영업, 마케팅, 구매, 개발, 제조 등등의 팀들이죠. 혁신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팀(dedicated team)이 있습니다. 편의상 이 팀을 혁신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다만,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약간 부정적일 수도 있는 혁신팀의 이미지와 연관 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혁신팀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 조직에서 혁신을 수행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존 팀의 구성원들은 주어진 프로세스 대로 업무를 수행해서 목표하는 성과를 창출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정형화된 일 처리 방식과 사고방식은 혁신을 이루는 것과 잘 맞지 않죠. 게다가, 혁신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이 기존 팀에는 없을 수 있습니다. 기존 팀에 새로운 인력을 수혈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역시 정형화된 업무 방식에 새로 뽑은 인력을 맞추도록 하는 과정에서 역시 혁신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새로운 팀을 꾸려 혁신팀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혁신팀은 보통 기업의 기존 부서에서 차출 형식으로 끌어온 인원과 외부에서 새로 영입된 인원을 섞어 구성하고 기존의 회사 운영 방식이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zero base에서 모든 운영 방식을 하나 하나 정립하도록 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죠. BMW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없어지는 에너지를 마찰에 의한 열에너지로 그냥 버리지 않고 그 힘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시스템을 regenerative brake라고 하죠. 그래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효율이 더 높아지는 겁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모인 BMW인데 왠지 프로젝트 진척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기존 일 처리 매뉴얼에는 베터리 팀이 브레이크 팀과 업무 협의를 할 의무도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은 팀들이었으니 말이죠. BMW는 배터리 전문가들과 브레이크 전문가들을 묶어 혁신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팀 이름은 에너지 체인이라고 했죠. 에너지 체인이 개발의 일부분을 담당했을 뿐, 하이브리드 개발, 제조, 판매와 관련된 다른 모든 업무는 기존팀들이 담당했습니다. 혁신을 위해 기존의 업무 관행을 깨는 것은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 기본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조직이 많은 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혁신을 통해 새롭게 펼쳐질 미래에도 자기 부서의 이익 또 자기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 기존 구성원들의 이기심이 작용하고 혁신팀의 구성원 또는 역할에 대한 기존 인력의 피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리부서는 관리의 편의를 위해 기존 관리체계, 운영 체계를 이식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는 아예 조직을 흡수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기존팀의 존속과 이해관계에 영향이 없도록힘쓸 것입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이런 종류의 장애를 극복해야 비로소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혁신 추진 토대가 마련되게 됩니다.

기존팀들과 기존의 운영체계가 혁신을 저해하도록 하지 않는 것은 간단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인형 제조업체가 인터넷으로 조작되며 인공지능을 갖춘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기로 하고 혁신팀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시죠. 기존의 인형 제조업을 위한 관리체계, 운영체계를 혁신팀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요? 또 혁신팀 업무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기존팀이 추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대답하시기 전에, 스스로에게 얼마나 혁신을 간절히 원하는지 물어보십시오. 혁신을 꼭 이루셔야 한다면, 정답은 이미 여러분께 주어졌습니다. 실례로, 통신 장비 제조업체였던 루슨트테크놀로지가 통신 서비스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택한 방법이 바로 zero base에서 모든 것을 새로 짜는 것이었습니다.

조직이 갖추어 졌으면, 혁신팀과 혁신팀과 직접 작업하는 기존팀간에 혁신을 위한 업무가 나누어져야 합니다. 기존 조직에서 잘 할 수 있는 업무는 기존팀이 혁신팀이 잘 할 수 있는 업무는 혁신팀이 맞도록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해야겠죠. 그런 혁신팀에서 일하는 기존 조직 출친 맴버들은 낮설고 상당히 불편해 할지도 모릅니다. 또 혁신팀과 협업 해야 하는 기존팀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왜 그런지는 잘 아시죠?


조정하기

혁신을 위한 토대를 잘 마련 하셨나요? 이제 좀 더 오랜 동안 정성을 들여 해야 할 일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혁신팀과 기존 조직간의 갈등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피합니다. 갈등의 양상도 너무나 다양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 조차 만들기 어렵습니다. 혁신팀장과 팀원들의 인성과 자질도 매우 중요하고, 갈등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보상체계를 다듬고, 목표와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한다는 의식을 고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맥락을 잘 이해하면서 갈등을 잘 조정할 수 있는 CEO와 이사회가 있다면 좋겠죠. 역시,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신경 써야 하는 곳이 더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혁신팀과 기존팀 이렇게 양분했죠. 그 중 기존팀을 혁신을 담당한 기존팀과 혁신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혁신의 결과물을 기존 프로세스로 처리하는 팀으로 또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우신가요? 예를 들어, 새로운 제품이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면 그 제품을 판매하는 업무를 기존의 영업팀이 팀 조직의 변화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영업팀을 가리켜 공유조직” (shared staff)로 나누어 부를 수 있겠습니다.

공유조직은 사실 새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판매되는데 얼마나 자신의 역량을 쏟을지에 대해 스스로 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 판단에는 여러 요인이 반영 될 것입니다. 기존 업무도 바쁘다는 핑계로 신제품에 대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혁신팀과 혁신을 추진하는 경영층은 공유조직들이 혁신에 충분한 역량을 쏟을 수 있도록 공유조직을 잘 설득하고 기업 내 자원을 잘 배분해 주어야 합니다. 또 필요하다면, 보상체계를 다듬어서, 공유조직이 적극적으로 혁신의 결과물의 성공에 힘쓰도록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장기생존을 위한 혁신

혁신 기회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좋은 혁신 기회를 발견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일 수도 있습니다. , 그런 기회를 성공적인 사업으로 만드는 일은 회사의 장기 생존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유로 그런 혁신 기회를 성공으로 전환시키는 기업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앞에서 잠깐 살펴 보신 바와 같이, 경영자와 혁신을 이끄는 혁신팀과 기존 조직이 모두 함께, 갈등을 잘 조정하면서, 오랜 기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야만 비로소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혁신의 기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혁신의 전개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 것이죠. 그 과정에서 경영층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기업 경영이 어려운 것이고, 또 그래서 경영이 기업의 장기생존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Harvard Business Review, 2010, Stop the Innovation Wars 를 주로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