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1일 일요일

벤치마킹 교과서가 서점에서 사라진 이유 - 토요타와 소니의 몰락 - 이건희, 구본무의 컴백

얼마 전, 직장에서 벤치마킹을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경쟁사 벤치마킹이었죠. 벤치마킹이란 말 너무 흔하게 들어 보았고, 저 스스로도 자주 써 봤지만, 막상 보고서를 꾸미려니 막막했습니다. 서점을 찾았지만 "벤치마킹"으로 검색되는 책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어렵게 아마존에서 책을 몇 권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표지가 누렇게 변한 1990년대 초반에 인쇄된 책을 보면서 참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왜?

잠시 여러분들의 그리움이 향하는 70~80년 대로 떠나 보겠습니다. 당시 일본은 막강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부터는 모든 경영대학원에선 일본 기업들을 가르쳤습니다. 일본 기업 따라하기가 유행이였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즉, 경영 컨설턴트의 배를 불려 주었던 기법들은 다양했습니다. 잠시 추억을 되살려 볼까요.

  Total Quality Management
  Benchmarking
  Time-Based Competition
  Outsourcing
  Partnering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Change management

당시 대기업 사무실 벽에는 회의 시간 1분당 비용이 직급별로 표시가 되기도 했었고, 불량률을 전사적 노력으로 완벽에 가깝게 낮추려는 Six Sigma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노력을 계속 하면 세계 1등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살았었습니다. 암튼 그땐 그랬습니다.

벤치마킹은 1989년 Xerox 사에서 다른 회사의 모범 경영 방식 (best practice)를 배우기 위해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급속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른 기법에 비해 결론을 내고 보고서를 쓰고 또 경영진을 설득하기가 엄청나게 편했다는 점이 아마도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도 LG 전자에서는 "삼성전자에서도 이미 한다더라"라는 말이 최종 결정을 이끌어 내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본 따라하기 시류의 한 복판에서 1996년 한 40대 학자가 외칩니다. 일본 기업은 전략을 모른다. 그리고 뿌리 깊은 문화적 문제로 전략이 좌우하는 시대에 심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 분이 바로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효율적 운영(OE: operational effectiveness)과 전략(strategy)를 명확히 구분해 냈습니다. 그리고, 왜  OE 만으로는 경쟁자들을 계속 따돌리면서 좀 더 높은 수익을 누릴 수 없는지를 명쾌하게 논증합니다. 그리고, 약간은 빈정거리듯이 말합니다.

  "일본기업은 앞으로 전략 공부를 해야만  할꺼야."
  "Japanese companies will have to learn strategy."

이어 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일본은 지나치게(notoriously) 합의(consensus)를 지향한다. 게다가 일본 기업들은 사람 마다의 차이를 드러내서 아름답게 활용(accentuate)하기 보다는 차이를 없애(mediate) 버린다."

즉, "전략은 어떤 것을 어떻게 할지" 또는 "어떤 것을 안할 지" 대한 단호한 선택의 문제인데, 일본인들의 문화가 이런 단호한 선택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는 OE는 계속 추구해야 하지만, 전략이 더 핵심적이라고 못박죠. 그리고, 서점에서는 벤치마킹 책이 사라지게 됩니다. 한 순간에 촌스러워진거죠. 하지만, 아직도 벤치마킹 기법은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의 선언은 적중했습니다. 소니는 몰락의 길을 이미 걷고 있고, 토요타도 휘청거리죠. 수 많은 일본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반면, 오너 회장의 과감한 결단 하에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한국 기업들은 그 동안 사다리를 꾸준히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 괴짜 스티브가 아침에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결정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만 했던 애플은 시총 세계 1위가 되었죠. 바로 2011년 8월에 즉 이번 달에 말이죠.

얼마 전, 한 미국 저자가 쓴 책에 소개된 구글의 안드로이드 인수 비사가 큰 화재였죠. 안드로이드 설립자가 한국을 찾아와 삼성의 본부장과 회의를 했답니다. 지금은 연세대에 계시는 문제의 그 본부장이 들어와 착석할 때까지 삼성 맨들은 벽에 도열해 있다 착석합니다. 그리고, 본부장께서 말씀하시죠. 당신회사 직원이 8명 뿐이네요. ... OS를 만들어 공짜로 뿌리자는 안드로이드 사장의 말은 어찌 되었을까요? ...

지금 애플의 거대한 성공은 이미 수년 전 부터 "플랫폼 전략"을 기초로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되어 많은 경영대학원에서 비교적 소상히 강의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한국 학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죠. 따라서, 삼성이나 엘지 같은 거대 기업집단이 그런 흐름을 몰랐을리 만무합니다. 매년 수천명의 MBA들이 입사하는 회사들이니 신입사원들에게 물어 봐도 알 수 있었겠죠. 하지만, 삼성과 LG는 플랫폼 전략을 아직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합니다. 제때 결정을 못내린 것이죠. 결정 내릴 수 있는 식견있는 리더도 없었구요.

포터 교수의 일본 문화 비판을 작금의 삼성, 엘지의 위험한 상황을 그대로 적용해 보면 이건희 회장과 구본무 회장이 왜 또 다시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실 껍니다. 그리고 한국의 기업문화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할 절박할 필요를 느낍니다. 한국의 기업문화가 너무나 일본화(Japanization) 된 것은 아닌지, 활력을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죠.

Japanization은 오늘 현재 "몰락"과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IT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의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 현재의 KOSPI 성적입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는 겁니다.

"What Is Strategy?" Michael E. Porter, Harvard Business Review, 1996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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