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공지영의 “의자놀이” 그리고 마이클 센델의 “시장 사회”


공지영의 의자놀이” 그리고 마이클 센델의 시장 사회

지난 주 주말 잠시 빌려 읽은 공지영의 의자놀이”. 이 책의 부제는 인본주의자” (Humanist)입니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 관한 글이죠. 이 글을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결코 유쾌한 생각들은 아닙니다. 지난 한 주 현업을 떠나 본사 교육을 받으면서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우리를 휘감고 숨가쁘게 달려가는 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과 중첩해서 곱씹어 봤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저는 의자놀이의 첫 장에 소개된 영원한 청년 전태일을 떠올립니다. 무언가를 애타게 말하려 했던 그와 그가 죽기 전까지 그를 그렇게 대하던 그가 속한 시대를 말이죠. 청년 전태일을 의자놀이제일 앞에 제시한 공지영은 영악한 작가인 것은 분명합니다.

책을 읽기 전, 제가 제일 궁금했던 것을 먼저 말씀해 드리죠. 책의 제목 의자놀이는 과거 레크리에이션 강사들의 단골 프로그램이었던 노래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의자를 먼저 차지해야 상품을 받는 바로 그 국민 게임입니다. 이 책에서 의자놀이는 산자와 죽은자의 분리, 그 결과 새롭게 생기는 관계그리고 사람들의 변화의 출발점을 상징합니다. 출발이 다소 무겁군요. 훌쩍 떠나보죠.


살진 고양이들의 모임 그리고 디스토피아

겨울철 훌륭한 스키장이 많은 스위스의 조그만 도시 다보스. 해마다 이곳에선 우리에게 다보스 포럼이라고 알려진 회의가 열립니다. 정식 명칭은 세계경제포럼(The World Economic Forum) 이죠. 참가비가 아주 비싸서 큰 부자들이나 알려진 석학들, 정치 지도자와 유수 언론사의 기자들이 아니면 가기 어렵죠. 얼마 전 재벌 좌파라는 매우 황당한 수식어를 스스로 달고 모범적 행동이 재벌 자체에서 나와야 한다한다는 동화적인 주장을 거리낌 없이 흘리며 정당 활동을 시작한 김성주씨는 1997년 다보스 포럼이 선정하는 차세대 리더였습니다

과거 다보스 포럼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첨병이였죠. 그래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부터 다보스 포럼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포럼에 참가하는 부자들을 다보스의 스키 리조트에 놀러온 영악한 부자들이라는 뜻으로 “fat cats in the snow”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리죠. 다보스 포럼의 성격은 그쯤 됩니다. 최소한 전태일과 쌍용차 파업 노동자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 초입니다. 뜬금없이 2012년 다보스포럼을 위해 작성된 보고서 글로벌 리스크7판은 디스토피아(dystopia)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고 희망이 사라진 곳
“a place where life is full of hardship and devoid of hope”

그리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디스토피아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하죠. (“Analysis of linkages across various global risks reveals a constellation of fiscal, demographic and societal risks signalling a dystopian future for much of humanity.”)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 만성적 재정 불균형심각한 소득 격차을 가장 큰 위험으로 꼽았습니다. 발생가능성(likelyhood, probability) 과 충격(impact)이 모두 높다는 것이죠. 아래 그림은 향후 10년간 경제 분야에서의 예상되는 리스크의 프로파일입니다.



다보스 포럼이 제시한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는 예상 경로는 이렇습니다. 은퇴인구가 급증하면서 재정 적자는 가속화 되고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소득 격차는 노동자의 교육(skill) 격차로 귀결되며 신분 상승이 봉쇄되는 사회가 되죠. 이런 사회에서 정치적 안정을 점점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디스토피아에서 계속 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래 인용문과 그림을 참고하십시오.

“The interplay among these risks could result in a world where a large youth population contends with chronic, high levels of unemployment, while concurrently, the largest population of retirees in history becomes dependent upon already heavily indebted governments. Both young and old could face an income gap, as well as a skills gap so wide as to threaten social and political stability. This case underscores the danger that could arise if declining economic conditions jeopardize the social contracts between states and citizens. In the absence of viable alternatives, this could precipitate a downward spiral of the global economy fueled by protectionism, nationalism and populism.”





영국의 보수언론과 리턴십

세계 3대 경제지 중 하나인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의 주인은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부자 중 하나죠. 그래서, 이들 경제지들은 정말 보수적인 담론을 쏟아냅니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에 반대하며, 보호무역에 반대합니다. 노동 시장 유연성과 민영화, 자본 시장 자유화를 적극 지지하죠. 최근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실시된 양적완화 정책을 지난 몇 년간 끈질기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예상과 달리 양적완화가 지연되면 때론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속 보이는 거죠.

그런데, 이달 13일 이코노미스트가 소득 격차와 관련된 무려 18페이지짜리 특집을 냅니다. 그리고, 어떻게 소득 격차가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밝히죠. 그리고, 정부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경제 성장을 계속 하려면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한데,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교육 격차의 심각성에 대한 하버드 대학 교수의 다음 발언을 인용하며 시간이 촉박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낭떠러지에서 막 떨어지려 한다.”
“we’re about to go over a cliff.”

1920년대 말부터 세계경제는 대공황을 맞이합니다. 대 공황에 맞서 정부가 강력히 개입하죠.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강력한 누진세제도가 그 핵심입니다. 그 결과 공황은 극복되고, 1970년대까지 이른바 대 압착시대(the great compression)가 전개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 격차가 전에 없이 줄었던 시대였고,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였죠. 가난한 이민자의 어머니가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면 자식이 대학교육을 받고 근사한 직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미국 경제를 움직이고 있죠.



이런 흐름은 1980년대 시작된 신 자유주의가 최근까지 창궐하면서 다시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상위 0.1%가 차지하는 소득은 80년대 초 1% 남짓이었으나 지금은 미국 전체 소득에 5%이고 이것은 경제력 집중이 극에 달했던 산업혁명기의 영국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것이죠. 불과 30여 년 동안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실로 광풍이었습니다.

본래 신자유주의는 빈부격차의 순기능을 강조합니다. 부자들이 돈을 모아 공장을 세우면 배고픈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것이죠. 1980-90년대 신자유주의의 스타 경제학자였던 밀턴 프리드만은 심지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더 커질수록" 커진 불평등이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도록 박차를 가하고 그 결과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주장(“greater inequality would spur people to work harder and boost productivity”)을 거침 없이 했었죠.

프리드만은 왜 틀렸을까요? 경제적 불평등을 연구한 MIT 연구팀은 불평등의 제일 요인을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로 꼽았습니다. , 오늘날 기술의 변화는 점점 노동자들의 숙련과 지식을 요구하는데, 사회 환경은 저소득층 자녀들이 필요한 수준의 숙련과 지식을 갖추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것이죠

결과,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의 두뇌를 경제가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비효율이 생기는 것이죠. 헨리 포드가 Model-T를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할 당시의 노동자와 빅데이터 분석이 필수인 현대 경제가 요구하는 노동자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과, 오늘날 세계 유수의 기업은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최신호에 따르면, 심지어 경력단절이 있는 인재들을 “returnship”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불러들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가난한 영재들을 사장시켜온 결과를 우리는 지금 막 보고 있는 것이죠.


의자놀이: 이웃에서 타자로 그리고 이제 다시 이웃으로

쌍용차 파업노동자들이 겪은 고통 중 가장 끔찍한 경험은 어제까지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안부를 묻던 동료이자 이웃이 나에게 쇠 볼트 새총을 나에게 겨누는 타자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쭉 그렇게 타자로 대했습니다. 한 순간 의자놀이에서 탈락한 그들은 그렇게 우리 사회의 타자로 추락했죠.

신자유주의 맹점은 바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속성에 있습니다. 이 위험한 사상은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합니다. 예를 들죠. 중국에서는 진료권이 암거래됩니다. 치료를 받고 생명을 건지는 것 조차 금전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죠. 의사에게 웃돈을 주지 않으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실제 환자나 보호자의 흉기에 목숨을 잃는 사건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센델은 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시장 경제를 극복하고 시장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죠. 그리고, 이런 시각, 즉, 복지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은 학계의 소위 생산성주의자 (Productivist)들 사이에서도 정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복지가 경제 성장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죠

강조하고 싶은 점은, 신자유주의와 마이클 센델의 시장 사회” 의 기본 사상에는 정말 큰 철학적 차이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에서 탈락한 그들을 나와는 상관 없는 타자로 보고 경제에 대한 골칫거리이자 부담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장 사회는 그들을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내 이웃으로 보죠동의 하시나요?


한국의 선택: 디스토피아 피하기

2012년 우리의 선택도 이 세계사적 흐름에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에 많은 것이 녹아 있죠. 우리 앞에는 신자유주의와 시장 사회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것을 탈락자 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복지라는 잔여적(residual) 복지를 채택하여 미국-중국 복지 모델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 경제 성장을 위해 반드시 복지가 필요하다는 유럽의 생산적 복지 모델을 추구할 것인지를 묻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첫째 선택지도 중요하지만 두번째도 만만치 않죠. 아래 그림에서 두 방식의 실적 차이를 확연히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니 계수는 0.35를 넘어서면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같은 그림에서, 세계적인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도 볼 수 있죠.





이 선택 상황을 요약한 그림을 다음과 같이 준비했습니다. 이 표는 제가 만든 것이고, 누구든 자유롭게 쓰셔도 좋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고, 여러분 마음 속에서 2030년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으면 좋겠는지 먼저 결정하시고, 대선 주자들의 공약의 행간을 읽어 보시죠. 그러면, 누구를 선택해야 좋을지 결정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디스토피아, 피할 준비가 되셨는지요? 



당신에게 던져진 질문


마지막으로, 요약해 보죠. 여러분은 복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여러분은 경쟁에서 탈락한 청년들과 장년들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들이 다시 일어 서려면 또 그들의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려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려우니 우리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가난한 영재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경제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에 동의하시나요? 

이런 질문들이 당신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올바른 선택이 가능 할 것입니다. 단, 선택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다음 자료들을 주로 참고 했습니다.

의자놀이, 공지영, 주식회사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12 이 책을 빌려준 분께 감사함을 전하면서, 이 글을 그분께 드립니다.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은 우리의 이웃, "그들"에게 전달됩니다.
시장의 과잉팽창, 공동체 약화 부른다, 포스코 경영연구소, 2012. 10. 19.
Global Risks 2012 Seventh Edition, World Economic Forum http://bit.ly/yEDCDt
New cradles to graves, The Economist, Sep 8th 2012, http://www.economist.com/node/21562210
For richer, for poorer, The Economist, Oct 13th 2012, http://www.economist.com/node/21564414
Having your cake, The Economist, Oct 13th 2012, http://www.economist.com/node/21564421
As you were, The Economist, Oct 13th 2012, http://www.economist.com/node/21564413
The rich and the rest, The Economist, Oct 13th 2012,
Policy prescriptions, A True Progressivism, The Economist, Oct 13th 2012,
Talent, The 40-Year-Old Intern, Harvard Business Review, Nov. 2102, http://www.hbr.org

댓글 1개:

  1. 잘 읽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디스토피아가 한국에 도래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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