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써보셨을 “포스트잇 플래그”라는 것이 있습니다. 3M의 대표 제품 중 하나죠. 얇은 직사각형 합성수지 한쪽에는 점착제가 반대 쪽에는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색깔이 입혀져 있습니다. 보통 책이나 보고서에 나중에 재빨리 찾아야 할 부분을 표시할 때 사용합니다. 색상과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플래그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주로 계약서 사인할 곳에 미리 붙여 놓고 손님들이 쉽게 찾아 서명할 수 있도록 할 때 사용하죠. 쓰임새가 경영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포스트잇 플래그가 경영 혁신의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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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학력이나 경력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결점과 실수를 감추는 일에는 천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 해야 조직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히지 않고 원만하게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소중한 생존 경험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듭니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그리 살아가는 모습을 어제도 오늘도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쓸어 내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딱 붙어 복지부동하며 눈치로 하루 하루를 버텨갑니다. 이런 생존 방식이 정말 잘 통하던 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미래가 상당히 예측 가능했고, 어제의 업무가 오늘의 업무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 이 전략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대다수 열심히 일하시는 공무원 여러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일부 공무원들과 공기업 종사자들은 지금도 이 전략을 알뜰하게 사용하게 계시죠.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일부 기업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또렷하게 관찰됩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인 조직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가 만연하고 그런 크고 작은 실패들이 모여 정말 대형사고가 되고 나서야 실패가 규명된다는 것이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바로 최근 우리가 목격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 주체인 도쿄 전력은 너무나 예측 가능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요는 일정하게 증가하고 있었고 전력 사업의 특성상 일정한 지역에서는 독점적 공급자지위를 누릴 수가 있었죠. 심지어 도쿄 전력과 핵발전소를 관리 감독하여야 하는 일본 정부의 규제기관과 사실상 한 몸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나요? 원전에서 노심이 녹아내려 가장 위험한 발암물질인 플루토늄까지 대량 방출되는 최악의 사고가 나고 나서야 크고 작은 실패가 도쿄전력 내부와 규제기관과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실제로 오랜 기간 만연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는 분야마다 오랜 경험과 숙련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존재합니다. 박사위에 도사가 있다는 말처럼, 그들이 축적한 직무지식과 직무와 관련된 통찰력은 도사급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통찰력을 발휘해서 지금 회사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XYZ 프로젝트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그 문제점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지금 XYZ프로젝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입을 다뭅니다. 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나서서 얘기하기 보다는 오랜 동안 막대한 회사 돈과 자원을 더 많이 투자한 뒤 결론을 보고 나서 말하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말 잘 듣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직원들은 영리합니다. Blame game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들은 어제의 전략과 전술로 내일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플랫폼 전략에 실패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부동의 1위에서 끝없이 추락하는 노키아를 불타는 해상유전에 비유한 노키아의 신임 CEO의 발언을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제 잘 통했던 전략과 전술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과거의 전략과 전술이 빠르게 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점점 잘 작동하지 않게 되는 문제가 점점 축적되어 현실로부터 조금씩 더 멀어지게 되고 마침내 큰 파국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최신 하드웨어 기술을 빠르게 제품에 적용해도 즉 과거의 전략으로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시장에서 점점 밀리는 작은 실패들이 하루 이틀 모여서 결국 노키아의 경영 위기가 불거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작은 실패들을 재빨리 알아차려서 실패를 통해 배우고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했다면 노키아는 화를 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드웨어를 최고로 만들기 위에 기상천외한 기술개발에만 다걸기 했었죠.
자 결론으로 들어갑니다. 영리한 직원들은 실패를 되도록 끝까지 감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영자와 회사의 중간관리자들이 오랜 기간 모여 만든 회사의 문화와 보상체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사실은 회사와 그들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죠. 여하튼, 그런 영리한 직원들이 모인 조직은 작은 실패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작은 실패를 발견하지 못하면 작은 실패가 모이고 또 모여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실패가 된 후에야 그런 실패들을 발견할 수 있죠. 오랜 시간과 돈이 낭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은 그런 기업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거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작은 실패를 잘 발견해내고, 발견된 실패를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체계를 갖춘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은 운명이 극명하게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작은 실패를 재빨리 발견하기 위해 꾀를 낸 어떤 영리한 CEO 말씀을 드리죠. 보잉사를 떠나 경영위기에 허덕이는 포드에 2006년 9월 둥지를 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출신 Alan R. Mulally는 임원들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마다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좋은 내용의 보고서에는 초록색을,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면 노란색을 문제점이 담긴 보고서에는 빨간색을 붙이는 식이였죠. 사실 미국서는 흔히 쓰이는 방법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리 지시하고 앨런이 서너 번 미팅을 했어도 누구 하나 노란색이나 빨간색 플래그가 붙은 보고서를 회의장에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이제 잘 아시죠?
엄청난 경영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앨런은 다시 임원들을 모아놓고 다그쳤습니다. 뭐 잘못되고 있는 것은 없나요? (“Isn’t anything not going well?”) 며칠이 지나, 다시 대회의실에 모인 중역들 중 한 명이 궁색한 표정으로 노란색 플래그가 달린 리포트를 꺼냈습니다. 심각한 개발 문제로 신차 출시가 지연될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죠. 사실은 빨간색이 붙어야 할 보고서였습니다. 보고가 끝난 후 여러분 모두 잘 아시는 그 죽을 것 같은 무거운 정적이 흘렀죠. 그 때 앨런이 박수로 정적을 깼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앨런이 받아보는 보고서 플래그 색상이 물론 다양해졌습니다. 포스트잇 플래그가 포드사에서 경영혁신의 도구가 된 순간이죠.
노파심에서 제가 항상 드리는 얘기지만, 도구가 아무리 값지고 훌륭해도 쓰는 사람들이 준비 되어있지 않으면 도구는 무용지물이거나 심지어 위험한 것이 되고 맙니다. 포스트잇 플래그로 경영을 혁신하려면 도구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사람과 조직의 문화를 먼저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먼저 조직이 수행하는 일의 종류와 실패의 유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영자, 관리자, 팀원들의 실패에 대한 생각과 보상체계도 다듬어야 합니다. 다소 긴 얘기가 될 것이므로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Harbard Business Review 4월호, Fourtune 2009년 (Allan), Bloomberg 뉴스 (노키아) 등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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