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포르투갈이 EU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스 아일랜드에 이어 구제금융을 신청한 세 번 째 유럽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에도 시장의 반응은 차분했습니다. 두려움에 빠져 투매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별다른 혼란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유럽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문제가 있는 몇몇 나라들의 공공부문 부채가 많고 앞으로 빛이 줄기는 커녕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구조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로 EU의 핵심 국가 (core countries) 인 독일과 프랑스는 건실하지만, EU의 변두리에 위치한 비핵심 국가들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EU Peripheral Crisis라고도 불립니다.
유럽의 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는 오랜 동안 시장의 불안 요소 였습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진화되지 않으면,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유럽 시장으로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물건을 예전처럼 팔지 못하게 되면 한국 경제도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죠.
유럽의 재정위기가 크게 불거진 때는 2010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2009년도 재정적자 규모가 그리스 GDP의 6% 정도로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12.7%로 밝혀진 것이죠. 그리고 그 규모가 계속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상 국가 차원에서 분식회계로 진실을 은폐해왔던 것이 국제적 압력에 들통난 것이었죠. 그리스에 돈을 꾸어준 사람들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그리스에 돈을 꿔 주겠다는 사람들은 터무니 없이 높은 금리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빌릴 곳이 사실상 없어진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 상황은 은행 시스템에 오랫동안 문제가 있었던 아일랜드에서도 재연되었습니다. 도미노 효과가 시작된 것이죠. 투기세력들은 한 번에 한 나라씩 온 힘을 다해 공격해서 막대한 투기수익을 불과 몇 일 혹은 몇 달 새에 챙겨 달아납니다. 이렇게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한 나라씩 차례로 무너지는 현상을 두고 병이 전염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전염 효과 (contagion effect) 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 다음은 포르투갈, 스페인, 벨기에, 이탈리아 등등이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소문처럼 포르투갈이 지난 주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습니다. 흉흉한 소문이 사실이 되었는데도 시장은 차분했습니다. 2011년 4월까지 많은 것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1. 그리스는 IMF에서도 지원 받았지만, 포르투갈은 EU에서 단독으로 지원합니다.
믿었던 EU 회원국 그리스에 의해 사실상 사기를 당한 EU는 당시 사태를 해결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회원국이 모여서 의견을 모으고 돈도 모아야 하는데 시간도 부족했지만, 국내 정치도 신경써야 하는 정치인들이 모여 뜻을 하나로 모아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죠. 그래서, 미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IMF가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인들로서는 자존심 돋는 일이 결코 아니었기에 그 동안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결과, 지난 3월 큰 틀에서 EU 안정화 협약이 만들어졌습니다. 큰 규모의 안정화 기금도 마련되었죠. 이제는 유럽 재정위기를 EU가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2. 포르투갈의 구제금융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유럽의 경우 한 나라의 10년 만기 국가 채무에 적용되는 이자율이 7%가 넘어선다는 것은 사실상 그 나라의 경제적 안정성에 대해 시장이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년 말부터 이미 포르투갈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7% 선을 넘나들기 시작했고, 올 초부터는 아예 7%를 넘겨 버렸죠. 모든 사람들이 예상한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죠. 시장은 그래서 조용했습니다.
3. 포르투갈은 EU의 맞불 작전
산불을 끄기 위해 소방 헬리콥터가 한 번에 수천리터씩 물을 퍼다가 산불 현장에 퍼붓기도 하지만, 바람의 방향과 지형을 잘 고려해서 불길이 앞으로 다가올 지역에 미리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리 불을 내서 탈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죠. 거세게 다가오는 불길도 더 이상 태울 무엇인가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꺼져버리고 맙니다. 맞불작전이죠. 이 경우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불을 끄기 위해 지른 불이 방어선 후방으로 번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불길이 번질 방향을 잘 봐서 충분히 자신감이 있을 때만 작전을 쓸 수 있다는 것이죠.
얼마 전, 포르투갈의 소크라테스 총리가 발의한 재정적자 감축안을 포르투갈 의회가 부결시켰죠. 포르투갈의 재정적자 감축안이 만들어진 배경은 EU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즉, 포르투갈의 사태 해결을 위해 EU가 이미 강력히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포르투갈의 현재 정치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EU의 권고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포르투갈에게 당연히 EU는 구제금융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방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이 말을 듣도록 만드는 방법 중에 구제금융처럼 큰 것이 없죠. 이 모든 상황이 EU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있다고 봐야한다는 뜻입니다. 맞불 작전이죠.
그렇다면, 후방은 안전할까? 재정위기에서 포르투갈 다음 순서가 스페인이었습니다. 스페인의 국채수익률은 어떨까요? 아래 그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서는 높은 금리를 물고 있지만 7% 한참 아래서에 안정적이죠. 최근들어 이자가 좀 깍이기까지 했습니다. 후방은 안전하다고 볼 수 있겠죠. 유럽의 재정위기가 더 이상 번지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 특히 스페인같은 대마(big game)가 죽는 일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시장의 정서입니다.
캡션을 빼먹었군요. 위 그림은 스페인 국채 10년물의 만기 수익률의 시계열 자료입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끝났을까?
재정위기의 본질을 파악했다면, 그리스 같은 나라들이 나라 빛을 앞으로 줄여 나갈 수 있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통 그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이 돈을 덜 쓰고,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구조와 함께 국민들이 겪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제가 좀더 강하게 되어 세수기반이 늘어나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많은 진통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한 번 망가진 경제가 정상화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 국민들의 특성을 봐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이 어려운 과정을 겪을 그리스 경제, 아일랜드 경제, 포르투갈 경제가 합격권에 들어갔는지 심판할 심판관은 시장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이들 나라들을 지탱해줄 구원투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구원투수들이 정말 이름 값을 할만큼 믿을 만 한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죠.
어려운 고비는 넘겼지만, 그래서 아직도 유럽 재정위기는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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