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윤석철 교수 저 "삶의 정도"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윤석철 교수를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윤석철 교수의 팬이 되었다. 윤 교수는 독문학사 원자력공학 석사 경영학 박사이다. 통섭적 지식을 가진 셈이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인문학적 냄새와 수학적인 간명함이 공존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기업의사회적책임(CSR)이나 공유가치창조(CSV)의 착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냉철한 기업 전략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포터 교수의 냄새도 난다. 마이클 포터 교수도 우주공학 학사 경영학 석사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윤교수의 책은 생존 부등식이라는 개념 하나로 집약된다. 간명하다.

V(가치) > P(가격) > C(원가)

보는 이에게 실소마저 일으키는 이 부등식의 의미는 이렇다. 물건 값은 물건을 만들 때 들어간 돈보다는 커야 한다. 그리고, 물건 값보다 그 물건을 사서 쓰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가 더 커야 사람들이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는 것이다. 이 조건이 성립 해야 기업이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존 부등식이다.

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등식에 거의 대부분의 경영학적 가르침이 녹아있다. 대단한 통찰력이다. 좀 더 자세히, 부등식의 오른편을 보자. 가격과 원가의 차이가 기업이 챙기는 이익이다.

P(가격) - C(원가) = 이익

매출총이익인지 영업이익이지 경상이익인지 세전이익인지 당기순이익인지 따지지 말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높이고 원가를 낮추면 된다. 이것이 월스트리트가 주주의 지위에서 세상의 모든 기업에게 요구하는 바다. 그리고 월스트리트는 분기마다 정확한 목표를 숫자로 제시한다. 어떤 기업의 이익과 현금흐름이 어떠해야만 한다고 미리 정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업의 CxO들은 모든 힘을 다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 일견 문제 없어 보인다. 그럴까?

예를 들어 보자, 어떤 CEO가 월스트리트가 정해 놓은 이번 분기 혹은 다음 분기 이익 목표 달성을 위해, 월급 많이 가져가는 고참 엔지니어들을 잘라 내고, 쉰이 넘은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정리해 버렸다. 금세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연구개발 프로젝트들은 이름만 남기고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지출을 줄였다. 직원을 해고하고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몇 개 날린다고 하여 시장에서 이번 분기 또 다음 분기에 팔리는 물건의 양에 당장 영향이 없다. , P는 유지하면서 C를 줄이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 CEO는 월스트리트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거액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챙긴다.

이렇게 하면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것이 상식이고 이것이 직관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아주 오랫동안 이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 1980년대부터 전 세계적인 규범이 된 주주가치극대화(maximizing shareholder value)가 주범이다. 주주가치극대화의 최대 단점은 단기성과를 극대화하는데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장기성장잠재력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주가치극대화에 매몰되면 좋은 기업을 당장 반짝 할지 모르나, 곧 꺼져버릴 등잔처럼 부실한 기업으로 만들어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이제 생존부등식이 왜 위대해 보이는지 살펴보자. 부등식의 왼편이다.

V(가치) > P(가격)

단기 실적을 바짝 내기 위해 오랜 동안 노력하다 이내 부실해져 버린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능력이 점점 없어져 간다. 왜 그럴까? 기업은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 하는 사람, 그것을 만드는 사람, 그것을 잘 파는 사람 들이 모여서 공통된 목표를 향해 협동하는 장이다. ,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모아 일하는 곳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또 오십만 되면 확실히 잘린다는 예상을 하는 종업원들은 진심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 시키는 일을 잘리지 않을 정도로 하며 눈치를 볼 뿐이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 한다. 게다가, 그나마 재미를 붙여 열심히 하던 장기개발 프로젝트 마저 유명무실 해져 버렸다. 무성의하게 정성을 들이지 않고 타성으로 공부하는 척 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업이 깐깐하고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가치를 계속 만들어내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기업은 장기적으로 V가 작아진다. 생존부등식이므로, 살아 남으려면, 장기적으로 P를 낮춰야 한다. 그런데, P를 낮추면 장기적으로 이익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 생존 부등식의 단기적 측면 (P(가격) > C(원가))와 생존부등식의 장기적 측면 (V(가치) > P(가격))은 서로 상충(trade-off)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단기에 치중하면 장기 경쟁력이 손상을 입고, 장기에만 치중하면 단기적으로 돈이 돌지 않아 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와 단기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중용이 필요하다고 윤교수는 주장한다. 단기주의적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윤교수는 질문한다.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은 소비자들을 향하고 있는가? 혹시 당기 순이익에 시선을 온통 빼앗기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꼭 한 번 도전해 볼 일이다. 기업 경영의 측면 뿐 아니라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이 책에 도전하실 많은 분들을 위해 책의 나머지 내용들을 적지 않는다. 스포일링이 되기 때문이다. 꼭 일독하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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