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세금이 그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내도 다른 이들이 만든 물건과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피해가기 어렵죠. 갈등도 세금과 비슷합니다. 사람이 모여서 서로 의존하며 사는 이상,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무엇입니다. 기업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힘을 모아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예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해도 갈등이 있는 마당에 경영진이 갑자기 ‘혁신’을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일면식도 없는 외부 인원들을 갑자기 데려와 혁신팀을 만들어 혁신을 추진한다면 말이죠. 아마도 새로 수혈된 직원과 기존 직원 또 혁신팀과 기존 팀 간에 갈등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갈등이 제대로 통제되고 해소되지 못하면 불신이 싹트고 불신이 자칫 감정의 도화선을 건드리면 모든 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되는 팀간의 전면전(all-out war)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팀간의 전면전 상황에서는 혁신팀의 패하여 핵심 인력들이 떠나서 아마도 더 이상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혁신팀은 신생이고 기존 팀들은 막강하니까요. 그 결과 경영진이 추진하던 그 ‘혁신’은 좌절되게 되죠. 또, 그런 혁신을 시도한 경영진도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답은 물론 없겠지만, 참고할 만한 규칙들이 있습니다.
혁신을 위한 기초 공사
회사 내의 기본 팀들은 이미 잘 구성되어 나름의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편의상 이들 팀들을 “기존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들이 회사의 실적을 창출하는 원동력 (performance engine)이라는 것입니다. 영업, 마케팅, 구매, 개발, 제조 등등의 팀들이죠. 혁신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팀(dedicated team)이 있습니다. 편의상 이 팀을 “혁신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다만,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약간 부정적일 수도 있는 혁신팀의 이미지와 연관 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혁신팀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 조직에서 혁신을 수행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존 팀의 구성원들은 주어진 프로세스 대로 업무를 수행해서 목표하는 성과를 창출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정형화된 일 처리 방식과 사고방식은 혁신을 이루는 것과 잘 맞지 않죠. 게다가, 혁신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이 기존 팀에는 없을 수 있습니다. 기존 팀에 새로운 인력을 수혈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역시 정형화된 업무 방식에 새로 뽑은 인력을 맞추도록 하는 과정에서 역시 혁신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새로운 팀을 꾸려 혁신팀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혁신팀은 보통 기업의 기존 부서에서 차출 형식으로 끌어온 인원과 외부에서 새로 영입된 인원을 섞어 구성하고 기존의 회사 운영 방식이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zero base에서 모든 운영 방식을 하나 하나 정립하도록 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죠. BMW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없어지는 에너지를 마찰에 의한 열에너지로 그냥 버리지 않고 그 힘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시스템을 regenerative brake라고 하죠. 그래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효율이 더 높아지는 겁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모인 BMW인데 왠지 프로젝트 진척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기존 일 처리 매뉴얼에는 베터리 팀이 브레이크 팀과 업무 협의를 할 의무도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은 팀들이었으니 말이죠. BMW는 배터리 전문가들과 브레이크 전문가들을 묶어 혁신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팀 이름은 “에너지 체인”이라고 했죠. 에너지 체인이 개발의 일부분을 담당했을 뿐, 하이브리드 개발, 제조, 판매와 관련된 다른 모든 업무는 기존팀들이 담당했습니다. 혁신을 위해 기존의 업무 관행을 깨는 것은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 기본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조직이 많은 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혁신을 통해 새롭게 펼쳐질 미래에도 자기 부서의 이익 또 자기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 기존 구성원들의 이기심이 작용하고 혁신팀의 구성원 또는 역할에 대한 기존 인력의 피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리부서는 “관리의 편의”를 위해 기존 관리체계, 운영 체계를 이식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는 아예 조직을 흡수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기존팀의 존속과 이해관계에 영향이 없도록” 힘쓸 것입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이런 종류의 장애를 극복해야 비로소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혁신 추진 토대”가 마련되게 됩니다.
기존팀들과 기존의 운영체계가 혁신을 저해하도록 하지 않는 것은 간단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인형 제조업체가 “인터넷으로 조작되며 인공지능을 갖춘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기로 하고 혁신팀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시죠. 기존의 인형 제조업을 위한 관리체계, 운영체계를 혁신팀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요? 또 혁신팀 업무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기존팀이 추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대답하시기 전에, 스스로에게 얼마나 혁신을 간절히 원하는지 물어보십시오. 혁신을 꼭 이루셔야 한다면, 정답은 이미 여러분께 주어졌습니다. 실례로, 통신 장비 제조업체였던 루슨트테크놀로지가 통신 서비스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택한 방법이 바로 zero base에서 모든 것을 새로 짜는 것이었습니다.
조직이 갖추어 졌으면, 혁신팀과 혁신팀과 직접 작업하는 기존팀간에 혁신을 위한 업무가 나누어져야 합니다. 기존 조직에서 잘 할 수 있는 업무는 기존팀이 혁신팀이 잘 할 수 있는 업무는 혁신팀이 맞도록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해야겠죠. 그런 혁신팀에서 일하는 기존 조직 출친 맴버들은 낮설고 상당히 불편해 할지도 모릅니다. 또 혁신팀과 협업 해야 하는 기존팀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왜 그런지는 잘 아시죠?
조정하기
혁신을 위한 토대를 잘 마련 하셨나요? 이제 좀 더 오랜 동안 정성을 들여 해야 할 일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혁신팀과 기존 조직간의 갈등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피합니다. 갈등의 양상도 너무나 다양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 조차 만들기 어렵습니다. 혁신팀장과 팀원들의 인성과 자질도 매우 중요하고, 갈등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보상체계를 다듬고, 목표와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한다는 의식을 고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맥락을 잘 이해하면서 갈등을 잘 조정할 수 있는 CEO와 이사회가 있다면 좋겠죠. 역시,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신경 써야 하는 곳이 더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혁신팀과 기존팀 이렇게 양분했죠. 그 중 기존팀을 혁신을 담당한 기존팀과 혁신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혁신의 결과물을 기존 프로세스로 처리하는 팀으로 또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우신가요? 예를 들어, 새로운 제품이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면 그 제품을 판매하는 업무를 기존의 영업팀이 팀 조직의 변화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영업팀을 가리켜 “공유조직” (shared staff)로 나누어 부를 수 있겠습니다.
공유조직은 사실 새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판매되는데 얼마나 자신의 역량을 쏟을지에 대해 스스로 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 판단에는 여러 요인이 반영 될 것입니다. 기존 업무도 바쁘다는 핑계로 신제품에 대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혁신팀과 혁신을 추진하는 경영층은 공유조직들이 혁신에 충분한 역량을 쏟을 수 있도록 공유조직을 잘 설득하고 기업 내 자원을 잘 배분해 주어야 합니다. 또 필요하다면, 보상체계를 다듬어서, 공유조직이 적극적으로 혁신의 결과물의 성공에 힘쓰도록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장기생존을 위한 혁신
혁신 기회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좋은 혁신 기회를 발견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기회를 성공적인 사업으로 만드는 일은 회사의 장기 생존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유로 그런 혁신 기회를 성공으로 전환시키는 기업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앞에서 잠깐 살펴 보신 바와 같이, 경영자와 혁신을 이끄는 혁신팀과 기존 조직이 모두 함께, 갈등을 잘 조정하면서, 오랜 기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야만 비로소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혁신의 기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혁신의 전개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 것이죠. 그 과정에서 경영층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기업 경영이 어려운 것이고, 또 그래서 경영이 기업의 장기생존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Harvard Business Review, 2010, Stop the Innovation Wars 를 주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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