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토요일

가족 같은 조직은 왜 무너지는가?


가족 같은 조직은 왜 무너지는가?


아르셀로미탈?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는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입니다. 2012년 전 세계 기업순위가 70위 정도인데, 2011년 포스코가 160위 정도 였으니, 정말 엄청난 규모의 회사입니다. 이 크디 큰 회사가 우리 귀에 다소 생소한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이름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죠. 2006년에 설립 되었으니 불과 6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회사입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깊죠. 백여 년이 넘은 유럽의 제철회사들 수십여 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회사라 그렇습니다.



철강산업은 규모가 커지면 생산 단가가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잘 적용되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철강 기업간 인수합병이 아주 빈번했습니다. 때로는 정부가 주도하기도 했고, 점점 경쟁이 격화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기업들이 연합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같은 나라 기업끼리 뭉치다 EU 역내 기업간의 합병이 이루어지고 이젠 EU 역외 기업과도 한 몸이 되는 소위 “글로벌 합병”이 일상화 되고 있습니다.

기업간 인수합병은 무척 험한 일입니다. 일 자체의 추진이 복잡할 뿐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 사람을 줄여야 하기도 하고 인수합병이 모두 끝난 다음에도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험한 일을 왜 자꾸만 할까요? 그것도 수십 번 반복해서 말이죠. 인수합병을 중개하는 투자은행의 부추김도 물론 있었겠지만, 답은 하나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죠. 유럽 철강 산업의 저 처절한 노력은 결국 자꾸 변하는 경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도 깊고, 덩치도 큰 철강산업의 모습이 저런데 다른 산업은 오죽 하겠습니까?


경영 환경의 변화

경영 환경의 변화는 항상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기후의 변화, 인구학적 변동, 전쟁, 새로운 기술의 출현, 자본 축적의 심화, 사회 경제 제도의 발전, 문화 등등의 모든 것이 한데 모여 경영환경이 만들어 지죠.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항상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먹고 살기가 팍팍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겁니다. 자꾸 변하는 환경에 맞춰서 몸을 움직여 적응하려고 사력을 다해야 하니까 그런 것이죠. 하지만 지나온 기십 년을 돌이켜 보면, 추세적으로 어제 보다는 오늘이 또 오늘 보다는 내일이 좀 더 팍팍해지고 있단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역시 그 이유는 “변화” 때문입니다. “경영 환경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고, 복잡해지고, 예측이 어려워졌죠. 너무나 그 정도가 심해져서, 이제는 “전문가”들의 말에 의존해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문가” 들의 예측이 맞을 확률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죠. 또, 우리의 경험이나 육감으로만 기업을 경영할 수도 없습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는 지난 기간 우리가 축적한 “성공적인 경험”이 상당 부분 “이미” 쓸모 없어진 지 오랩니다. 따라서, 경험과 그 경험에 기반한 우리의 “통찰력”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는 “질곡”이 되죠. 결국 믿을게 없는 겁니다. 참 답답하죠. (요 말은 경상도 식으로 해야 재미납니다. 각자 속으로 한번씩 해 보시죠.)

더 답답한 것은, 이전에 잘 통했던, 예를 들어 무조건 낮에는 발로 뛰고 밤에는 야근한다는 류의 적응방식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우리 처지는 총 한 자루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족이지만, 이 상황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소위 전문가의 조언을 너무 믿는 분들이죠. 이 분들에겐 권총조차 단검조차 없지만, 몰려오는 적들을 향해 돌진하시곤 합니다. 너무 확신에 차 있으시죠. 이분들은 그런데, 보통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함께 끌고 가시기 때문에 정말 큰 민폐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바로 이 관점에서 매일 자신을 돌아봅니다.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돌아보기”를 뭐 그리 “비장감” 돋게 하지는 않습니다. ㅎㅎ


너무도 뻔한

팀 하포트 (Tim Harford)는 “왜 성공은 항상 실패로 시작하는 것인가”라는 친절한 부제를 달아 놓은 그의 책 어댑트(Adapt: Why Success Always Starts with Failure)에서 “적응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그의 방법론을 제 나름대로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시도 할 것 (trial)
처음부터 너무 크게 하지는 말 것 (experiment)
잘 다듬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 것을 고를 것 (selection)


어의 상실이고 멘탈 붕괴입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초등학교 교과서도 아니고 이런 뻔한 내용으로 책을 낸다니 말이죠. 그러나, 진정하고, 내친 김에 좀 더 간략히 요약해 볼까요? 글 쓰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그의 방법론을 더 간략히 줄여 보겠습니다.


시행착오법 (trial and error)


시행착오법은 수학적 방법론입니다. 해를 알지 못하는 체계에 임의의 숫자를 집어 넣습니다. 한 번 해보는 거죠. 바로 시도(trial) 입니다. 해를 알지 못하는 체계는 “변화되어 우리가 잘 모르는 새로운 경영환경” 쯤으로 볼 수 있죠. 첫 시도에 기적적으로 맞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틀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체계(system)은 그런 시도를 한 용감한 사람에게 조그만 선물을 해 줍니다. 바로 오차(error)의 크기죠. 이 “오차의 크기”는 현실세계에서는 목표와 성과의 차이(gap)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용감할 뿐 아니라 끈기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무모한 도전을 합니다. 다른 숫자를 넣어 보는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조그만 선물을 받습니다. 또 다른 오차의 크기입니다. 용감할 뿐 아니라, 끈기 있으며 현명하기까지 한 이 사람은, 이제 오차의 크기들을 비교해 가면서 다음에 어떤 숫자를 넣을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완전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근사한 숫자들을 찾을 수 있게 되죠. 기억하시나요? 고등학교 시절, 못 풀면 0, 1, -1 셋 중에 하나였다는 거?

수학적 방법론이니 방법론 자체가 틀렸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모든 조직이 이런 방법론을 잘 적용할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너무도 뻔한 이 방법론을 왜 우리는 적용하지 못할까요? 이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진짜 가치입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도대체 어떤 점이 잘못되어있는지 돌아보게 해 준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이 너무도 당연한 “시행착오법”을 잘 사용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조직의 장기 생존의 비법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깨우쳐 주려고 했던지, 팀 하포트는 유사한 사례를 지나치게 반복해서 책에 늘어 놓았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거슬렸던 부분입니다. 또, 한가지 더 지적한다면, 생물학적 진화 이론을 기계적으로 유추 적용했다는 점 또한 예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이런, 옆길로 샜군요. 다시 돌아가야죠.


가족 같은 조직은 왜 무너지는가?

아버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족을 머리에 떠올려 봅시다. 가족들이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 아버지가 결정합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아버지 친구가 아버지에게 이 모든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참고할 만한 전문적이고 자세한 조언을 해 줍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아버지의 결정이 내려지면,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꼭 해야 합니다. 사춘기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결정에 이견을 제시하면, 그것은 아버지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위험한 행동이 됩니다. 그리고, 성실하지 못하며 어려운 작업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이런 조직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겠냐고 볼멘소리를 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팀 하포트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과 미 국방성이 가장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또, 그 유명한 국방 장관 럼스펠트를 정점으로 미국이 이라크 전을 치를 때도 똑 같은 실패가 반복되었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속한 조직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지 점검해 보시죠.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의 정밀 분석을 통한 ‘큰 그림’ 도출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단합된 팀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명령 체계

하포트는 정밀 분석이 불가능하며, 큰 그림은 그려질 수 없다는 점을 논증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명령 체계를 가지며 한 방향으로 모두가 힘을 모으는 단합된 가족 같은 조직은 아주 위험하다고 잘라 말하죠. 이런 조직은 변화된 상황 속에서의 시행 착오를 통해 배울 수도 없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임무형 지휘 체계(mission command)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전투 현장에서 현지 환경에 적응하여 최적의 전투 방법론을 도출하는 권한을 하급장교들에게 위임하는 것인데, 권한 위임 없이 조직의 유연함을 달성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책을 시작한 하포트는 좀 더 적극적인 위험 감수 즉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과감하게 한 번 해 보는 조직만이 살아 남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드팩 루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전투 현장의 진실이 조직의 내부 깊숙이 또 최고 책임자에게 제대로 전달 될 수 있어야 그것으로부터 조직이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 조직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다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는 잘라 말하죠.

그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리가 다 익숙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주장의 연속이죠. 하지만 그의 이 뻔한 주장은 그가 책에 적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실감과 생명력을 얻습니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맺으며

스티브 잡스는 광적으로 인재를 찾았습니다. 그의 손발이 되어줄 특급 인재 (A players) 들로 팀을 꾸리고 자신이 아침에 거울을 보며 생각해낸 “이상향”을 제시했죠. 그리고, 특급 인재들이 제복을 입은 반듯한 해군 수병이 아니라 인도양을 누비는 해적들처럼 행동하도록 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무한히 마음껏 시도하게 허락한거죠. 우리 세대가 경험한 스티브 잡스의 유작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수 없는 mock-up이 쓰레기통으로 내 던져진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시제품을 잡스 자신과 그의 팀은 직접 사용하며 경험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거슬림도 수정해 나갔죠. 이렇게, 완벽한 경험을 만들고 그들은 그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Apple 입니다.


You will never know what you're good at until you try.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 드렸지만, 자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조직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수단과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그 순간 그 조직은 죽은 조직일 것입니다. 초 일류 기업이자 한 때 경영학계의 귀감이었던 ‘코닥’의 몰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만의 문화(culture of complacency)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당장 우리 조직을 점검해 볼 일입니다. 조금은 비장하게 말이죠.


다음 자료들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Tim Harford, Adapt: Why Success Always Starts with Failure, Farrar, Straus and Giroux, 2011, New York
이슈리포트 "유럽철강사, 본격적 구조조정에 돌입하나?", 2012. 9. 포스코 경영연구소
Walter Isaacson, Steve Jobs, Simon & Schuster, 2011
Adam Lashinsky, Inside Apple, John Murray, London, 2012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일관성, 반사회적 처벌 그리고 빅 데이터 민주주의

 일관성, 반사회적 처벌 그리고 빅 데이터 민주주의

아! 일관성

우리는 모두 일관성(consistency)을 기대합니다. 어제까지 나와 사랑을 속삭이다 오늘 다른 이성의 품에 평온하고 행복하게 안겨있는 연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죠. 사랑과 희생을 강조하며 평생을 봉사활동에 헌신해 왔다는 누군가가 실은 불쌍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학대해 왔다는 소식도 우리를 슬프게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어떤가요? 선거 전에는 구체적으로 뭔가를 해줄 것으로 약속했다가, 선거 결과를 알리는 신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나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정치인들도 있죠. 또, 한 입으로 대구에서는 이 말을 또 광주에서는 저 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더 흔한 경우는,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죠. 가계 부채를 더 이상 늘지 않도록 억제하는 그 규제만큼은 유지하겠다고 하고는 “숫자의 변화 없이” 사실상 규제를 풀어 버리는 경우가 가장 최근에 제가 본 사례입니다. 불과 몇 일 만에 적극 반대에서 적극 찬성으로 바뀐 반값등록금 공약 사례도 있군요.

우리나라만 이럴까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러닝메이트를 잘 뽑아 큰 덕을 보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롬니 같은 경우에도 그가 믿는 정치적 신념이 있는지 조차 의심될 정도로 말을 많이 바꿔왔습니다. 진보성향의 메사추세츠 주에서 활동할 때는 낙태의 권리, 총기 규제와 기후 변화 방지 정책을 지지했었죠. 심지어 정적 오바마의 의료보험개혁의 핵심인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정책도 그 당시에는 찬성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완전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서 미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처지라 그가 말을 바꾼 거라고 미국 유권자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야 할까요?



비록 정치학의 문외한이지만, 우리 삶에서 일관성(consistency)의 반대 개념은 기회주의(opportunism)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관된 말과 행동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손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유권자의 표를 잃을 수도 있고, 상사에게 깨질 수도 있으며, 사업기회를 잃을 수도 있죠. 기회주의는 그 표와, 상사의 칭찬과, 사업 기회를 당장 잡을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줍니다. 다만, 일관성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자기는 절대 일관성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속이며 살죠. (저만 그런가요? 하하하…) 하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고 살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신뢰(trust) 때문입니다. 그래서 덕유필린(德有必隣) 이란 말이 있죠. 덕은 도덕적 일관성 없는 기회주의자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은 분명합니다.


반사회적 처벌

하지만, 뭔가 찜찜합니다. 눈치 하나로 험한 세상을 수 십 년을 살아온 우리에겐 볼 일 보고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그런 느낌입니다. 도대체 일관성에 대한 보상이 있기나 한가? 험한 꼴 밖에 더 당하는가? 그렇죠. 어떤 온화한 성품의 강직한 공무원이 있다고 “가정” 하죠. 그 분은 법과 공익을 위해 판단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과 협력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하나 때문에 그토록 받고 싶은 돈을 받지 못하는 그 분의 상사와 옆 동료들이 있을 수 있죠. 상사와 동료들은 이 분을 제거하려고 모든 힘을 조용히 쓰죠. 항상 사람들에게 험담을 하기도 하고, 인사 철이 되면, 산속이나 바닷가 쪽으로 보내버릴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행동을 사회심리학에서는 반사회적 처벌(anti-social punishment)이라고 합니다. 공동체의 목적을 위해 협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협동을 이끌며 열심히 뛰는 사람(cooperators) 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결과를 챙기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무임승차자(freeloaders 또는 free-riders)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협동자들을 공격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경쟁자를 없애려는 목적에서 이 모든 것이 비롯됩니다.

반사회적 처벌 현상은 서구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 네 개 나라에서 유독 엄청나게 관찰됩니다. 어느 나라인지 볼까요?

South Korea
Greece
Russia
Saudi Arabia

이런! 혹시, 이런 나라에 살고 계신가요? 만약 이런 나라에 사신다면, 당장 여러분이 속한 조직의 장에게 가서, “협동의 룰”을 정립하라고 조언하십시오. 협동의 룰을 통해 협동자들을 충분히 또 잘 보호하지 않으면 언제나 항상 무임승차자들이 득세하게 되니까요. 만약, 우리 주위에서 무임승차자들이 득세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일관성에 대한 보상은 물론 협력자에 대한 보호도 없는 겁니다. 연구 결과가 그렇답니다. 또 우리 경험도 그렇죠?


신뢰의 민주주의

정치 이론은 투명성(transparency)이 확보되면 신뢰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방이 환이 들여다 보이는 주방에서 조리된 음식은 좀 더 신뢰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즉, 다음의 인과관계가 성립할까요?

투명성 à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 à 민주적 제도(democratic institution)에 대한 신뢰

투명성은 계속 강조되어 왔고 모든 법령과 정부 정책들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투명성이 증가된 셈이죠. 그런데, 정치인들을 신뢰하시나요? 투표율은 높아지고 있나요? 정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나요? 정부 정책에 대한 공청회의 절차적 민주성을 신뢰하십니까? 지지하는 정당이 있으신가요? 정부가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슬프게도,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되면 경제적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등식도 1980년대 이후 더 이상 성립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가 되어 버렸죠.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1987년 체제, 신자유주의 그리고 IMF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말할 수도 없었고, 머리를 길게 기를 수도 짧은 치마를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죠. 그런 체제는 우여 곡절 끝에 1987년 일단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이후 정권이 바뀌고 우리는 그들을 신뢰했습니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우리 삶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때마침 1980년대 초부터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광풍이 우리를 비껴 갈리 만무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에 휩싸여 서서히 변해가던 우리의 삶은 아시아경제위기와 IMF 구제금융이라는 사건을 통해 신자유주의체제에 백기 투항했죠.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급격히 또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직장인으로 경험하던 직장생활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40대 중반 이후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테죠.

이 격변의 시기에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입니다. 세상은 이제 두 시기로 나뉘게 됩니다. 사회주의 실험장이었던 소련이 존재하는 세상과 소련이 사라진 세상. 소련이 건재했던 세상에서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이 속한 나라가 소련처럼 되는 것에 대해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투표로 또 혁명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가진 대중들과 타협했죠. 소위 사회적 계약(social contract)을 맺습니다. 많은 노동 규제와 복지정책들이 그 핵심이고, 서구의 복지국가도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이 최소한 “타협”을 통해 대중을 달랠 마음을 가질 정도로 그들은 대중을 두려워했습니다.

1989년 이후, 이젠 소련이 없죠.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엘리트들은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유권자들도 두려워하지 않죠. “정권은 바뀌는데 정책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확이 이 상황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엘리트들은 엄청나게 발달된 뇌 과학을 통해 유권자들의 감정을 조작(manipulate)하기에 온 힘을 쏟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언론의 기능이 매우 중요해지죠. 어떤 메시지가 어떤 순서로 언제 어떤 강도로 전달되면 어떻게 유권자들의 감정이 바뀔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섭죠.


불신의 민주주의, 빅데이터 민주주의 그리고 일관성에 대한 보상

이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최근 일부 정치학자들 사이에선 “신뢰” 대신 “불신(mistrust)”을 민주주의의 매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치인들을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권력을 넘겨주는 방식 대신에 유권자들이 그들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스스로 빅 브라더가 되어 정치인들과 관료를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죠. 어떤 정책에 대한 각료회의의 토의 내용이 발언자의 실명과 정확한 발언 내용이 모두 적힌 형태로 24시간 이내에 인터넷에 공개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동영상과 함께라면 더 좋겠죠. 누가 어떤 경로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기여했는지 일반 대중들은 다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 내용은 영원히 기록에 남게 되죠. 아마,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극도로 발언을 조심할 것입니다. 정당하지 못한 발언을 하면 또 평소 발언과 다른 주장을 하면 그 것으로 정치생명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테니까 말이죠.

방금 말씀 드린 이런 자료는, 이 차원은 지금도 공개되고 있는 “토의: 이견 없음, 의결: 원안 의결”로 가득한 “국무회록” 수준이 아닙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이 알게 해 주는 자료입니다. 공개하기 많이 꺼려지겠죠. 직접 감시 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테니 스트레스가 많을 껍니다.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한 정치인이 또 한 고위 관료의 모든 발언과 행적을 따라가보는 건 어떨까요? 신문 인터뷰, 강의 동영상, 회의 녹취록 등등의 자료를 모두 포함해서 말이죠. 아마도 그가 기회주의자인가 일관성을 지닌 인물인가 판단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세상은 빅 브라더의 세상입니다. 미국에선 술이나 담배 같은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사는 사람들에게 구매 시 “현금”만을 사용할 것을 전문가들이 권고합니다. 카드를 쓰면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각종 보험료가 올라가기 때문이죠. 심지어 대출이 거절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빅 데이터의 바다를 누비며 원하는 정보를 추출하고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기 원하는 은행과 보험사들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고용합니다. 퀴즈프로그램에서 퀴즈 챔피언들을 가볍게 눌러버린 IBM의 인공 지능 컴퓨터 Watson은 이미 많은 기업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Watson의 특기 중 하나가 “보험 사기범 잡기” 입니다. 보험 사기범이야말로 “일관성”과는 담을 쌓은 자들이지요. 동의 하십니까?

혹시, Watson이 일상에 바쁘고 지친 우리 같은 유권자들을 대신해서 정치인들과 관료들을 감시해 줄 수 없을까? 그들이 근무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알려줄 수는 없을까? 그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또는 돈을 맡기거나 권력을 잠시 넘겨줘도 좋은지 판단해 줄 수 없을까? 혹은 “일관성 지표” 같이 점수를 매겨 줄 수는 없을까? 누군가 이런 정보를 저에게 넘겨준다면, 저는 말과-행동의 일관성, 어제 말과 오늘 말의 일관성 그리고 나에게 한 말과 내 이웃에게 한 말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나의 한 표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복인 척 하면서 국민의 이익 대신에 떡값을 건네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말고 말이죠.


IT Korea

대한민국은 IT 강국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을 빅 브라더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죠. 그리고, 구조화되지 않은 빅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솔루션을 미국에서 수입하는데 전혀 제약이 없는 미국의 우방국이기도 합니다. 결국, 기술적인 제약은 없습니다. 의지 문제죠. 그들을 누가 빅 브라더의 감시아래로 집어 넣을 것인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대선공약집

대선공약집은 공짜로 줘도 잘 안보게 되기 쉽습니다. 그만큼 정치와 민주적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죠. 그런데, 안철수 교수는 그런 대선공약집 수십 만 부를 돈 받고 팔았죠. 아마도, 그런 일을 저지른 최초의 한국인이겠죠.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대선공약집 “안철수의 생각”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 리더십의 바탕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진심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믿고 따라옵니다. … 결국 진심은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안철수 교수의 이 발언 속에서,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그들의 기회주의적 행동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믿지 못하고 따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그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끊임 없이 도전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온 그의 삶 속에서 일관성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진심을 느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00여일 남짓 남은 기간 동안 계속 지켜 보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안철수 룸싸롱” 사건도, 결국은 안철수 교수의 “일관성” 이미지에 대한 공격이죠. 아, 정말 사족이었네요.


맺으며

저는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일관성에 대한 보상은 일관성을 유지한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도록 하고 기회주의적 행동을 일삼은 분들은 다른 곳에서 사회를 위해 공헌하도록 걸러 드리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또 다시,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 또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푸념을 다시는 하지 않으려면, 우리 나라를 일관성에 대한 보상을 하는 나라 또 협력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이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합니다. 돈도, 기술도 있습니다.이젠 선택입니다. 진부하지만, 꼭 해야 하는 말: 선택은 우리 몫이죠. 그리고, 그 선택이 옳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로 다음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 김영사, 2012
Can democracy exist without trust?, Ivan Krastev, TED 2012, http://on.ted.com/l6d9
Experimental psychology: The roar of the crowd, The Economist, http://econ.st/JyjXsM
Big data: Crunching the numbers, The Economist, http://econ.st/JwA9uE

2012년 7월 28일 토요일

양적완화에 대한 단상:QE, or not QE?


QE, or not QE?

양적 완화(QE). 이 요상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 없죠. 그 정도로 양적 완화는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양적 완화가 시작되면, 채권 시장, 주식 시장 또 부동산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주식 시장은 양적 완화의 열렬한 팬입니다. 지난 주말의 요동도 또 앞으로 보시게 될 이번 주의 흐름도 모두 7월 31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연준의 FOMC의 양적 완화 결정에 대한 전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빅 이벤트죠. 얼마 전 어느 경제지에 실린 양적 완화를 애타게 구하는 다소 긴 기사를 읽고 오랜 만에 글을 쓸 결심을 했습니다. 바쁜 일상 탓에 많이 늦었지만, 경제학자들과 양적완화를 구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속내를 좀 적어볼까 합니다.


필요 악: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도 없고,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를 주지 않는다면 또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면, 여러분은 십중팔구 돈을 차곡차곡 여러분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보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관한 돈의 가치는 은행이든 집이든 그대로 보존되는데다 날도 더운데 은행가기 귀찮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은행이 갑자기 1%의 정기예금 이자를 준다고 하면 어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트리스 아래 돈을 쓸어다가 은행에 맞길 것입니다. 은행에 맞기는 순간, 사람들은 그 돈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거나 주식을 사거나 사업을 시작하려는 동생에게 돈을 꿔줄 수 있는 가능성을 잠시 포기해야 하지만 그 대가로 약간의 이자를 받습니다. 그 결과, 당장의 소비나 투자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소비나 투자결정은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장차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영향을 받습니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 보죠. 아래와 같은 유명한 등식이 있습니다.

실질금리 = 명목금리 – 물가상승률

은행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금리는 명목금리(nominal interest rate)입니다. 눈에 보이는 금리죠. 그런데, 앞으로 내가 맡긴 돈의 가치가 어찌 변할 것인가를 보려면, 물가상승률(inflation)도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인이 고려된 금리가 실질금리(real interest rate)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단순한 빼기입니다. 누구든 쉽게 계산할 수 있죠.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은행 정기 예금 금리는 1%인데 물가상승률은 3%인 경우죠. 앞선 식을 사용하면, 실질금리는 -2%로 계산됩니다.

실질금리 (-2%) = 명목금리 (1%) – 물가상승률 (3%)

다들 아시겠지만, 이 상황에선 많은 사람들이 은행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돈을 굴릴 다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가만 있으면 해마다 자기가 가진 돈의 가치가 점점 줄어드는 벌을 받게 되니까요. 그래서, 주식시장도 기웃거리고 아파트나 상가를 좀 사볼까 생각을 하게 되죠. 또, 옆집 철이네 아빠가 유망한 벤처사업이라고 극구 칭찬하는 회사에 투자 해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 더 절실히 하게 됩니다. 결국, 소비와 투자는 늘어나게 되고, 그 결과로 물가가 좀 더 오르고 그에 따라 좀 더 소비와 투자는 늘어나게 됩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이것을 경제 성장이라고 부르며 모두들 좋아합니다. 보너스도 두둑이 받고 근사한 휴가도 즐길 수 있게 되니까요. 이것이 경제학자들의 머리 속에 있는 천국 같은 상황입니다. 약간의 인플레이션과 실질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열쇠죠.

사족이지만,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는 죄악입니다. 현금을 가진 사람들 혹은 매달 일정한 금액의 월급이나 연금을 받는 저 같은 사람들이나 은퇴한 노인들 호주머니에서 아무런 동의 없이 돈을 빼앗아 주식과 집과 공장을 가진 자산가들이나 빚쟁이들에게 나누어 주니까요.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저에게는 죄악이지만, 자산가들과 빚쟁이들 입장에서 냉정하게 따져보면 축복인 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플레이션을 다소 과도하게 일으켜서라도 “자산 시장 안정”과 “부채 상환 능력 유지”라는 아름답게만 들리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리고, 그것이 경제 위기를 해쳐 나가는 고육책인양 포장합니다. 마치 자신은 이익을 보지 않지만 공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이죠. “매일경제신문” 같은 대한민국의 대표 경제지가 앞장서서 부동산 가격이 붕괴되면 나라 경제가 망가진다는 논리 아래 부동산 산업계와 연대하여 부동산 가격 유지 궐기대회를 열고 계속해서 집값을 올려야 한다는 사설을 써 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경제학자들은 다소간의 인플레이션은 필요한 것으로 봅니다. 제 입장에선 인플레이션은 악이니, 결국 인플레이션은 필요 악인 겁니다.


최후 수단: 양적 완화

수퍼박테리아란 놈은 모든 항생제를 이겨내는 힘을 지닌 미생물입니다.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아프기 시작하면 의사들은 보통 값싸게 널리 쓰이는 항생제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차도가 없으면 항생제 단계를 높여 싸우기 시작합니다. 값도 비싸고 또 부작용도 더 많은 방법이지만, 환자는 살리고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수퍼박테리아는 의사가 가진 최후의 수단을 비웃어버립니다. 가엾은 환자는 이 싸움의 희생자가 되죠. 이런 일이 경제에도 일어납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정점을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경제 규모(GDP)가 계속 줄어드는 수모를 당하죠. 인구, 정치, 기술, 제도, 문화 등 일본이 수모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간단히 숫자 몇 개만 보겠습니다. 앞서 보셨던 공식으로 돌아가죠. 일본은 제로금리로 유명하죠. 그러니 명목금리는 "0" 입니다. 물가는 1999년부터는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물가상승률은 -1%쯤으로 보겠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실질금리는 1%가 됩니다.

실질금리 (1%) = 명목금리 (0%) – 물가상승률 (-1%)

소비와 투자가 줄고, 줄어든 소비와 투자 때문에 물가는 더 떨어지죠. 실질금리는 더 높아지고, 소비와 투자는 더욱 줄게 됩니다. 이른바 경제가 디플레이션 함정(deflation trap)에 빠진 겁니다. 만약 금리가 5%쯤 되었더라면, 하루아침에 금리를 3%로 낮춰서 이 함정을 쉽게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부동산 시장을 유지하려고 이전에 오랫동안 금리를 자꾸 낮추다 보니 명목금리는 이미 0이 되었죠. 금리를 움직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답답한 상황이었죠.

일본의 경제 관료들은 영리했습니다. 2001년 3월 중순 그들은 양적완화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내고 돈을 찍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찍어낸 돈이 경제에 공급되면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인플레이션이 점점 심해지면 그토록 바라던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현실이 되어 사람들이 돈도 쓰고 투자도 시작 해서 디플레이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일본 경제 관료들보다 조금 더 영리했습니다. 돈을 감추기 시작했죠.


돈은 사라지고: 화폐유통속도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가지고 경제적 선택을 합니다.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 분명하니 (자산 인플레이션 기대) 다소 과도한 빚을 져서라도 아파트를 산다(경제적 선택)는 식이죠. 닥쳐올 인플레이션이라는 “악” 앞에서 패자의 위치를 버리고 “완벽한 승자의 위치” 즉 “빚쟁이 겸 자산가”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달콤한 전리품을 챙깁니다. 십수억짜리 아파트의 주인이 되어 올라가는 아파트 값을 보며 흐뭇해 하고 주변의 부러움을 즐깁니다. 승자가 되는 거죠.

세상이 바뀌어서 자산 인플레이션 기대를 전혀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죠. 예를 들어 아파트값은 어느 유명한 역술인의 얘기처럼 2032년까지는 절대 오르지 않는다고 모두들 믿는 다고 가정해 봅시다. 게다가, 우리나라 외부의 경제문제 때문에 경제 전망이 극히 좋지 않다고 생각해 보죠. 사람들은 이제 정 반대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아파트를 팔아 현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한 채 새로운 사업의 시작을 미루고 데이트 비용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돈이 돌지 않게 되는 것이죠. 돈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사람들의 불안함을 달래주기 위해 주인 곁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상황을 아래의 식으로 표현해 보죠.

경제에 존재하는 물건 x 물건의 가격 = 돈의 양 x 돈이 도는 속도

양적완화는 돈의 양(money stock)을 올려서 물건 값을 올리려는(inflation) 정책입니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는 경제에 존재하는 물건의 수량(goods supply)과 돈이 도는 속도 즉 화폐유통속도(velocity of money)는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입니다. 그럴까요? 양적완화가 도입된 일본의 경우 돈이 도는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하락했죠. (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선이 유통 속도와 유통 속도 증가율을 각각 나타냅니다.) 양적 완화로 돈의 양이 늘었지만, 불안한 사람들이 돈을 계속 움켜 잡았습니다. 마이너스 실질 금리는 찾아 오지 않았고, 경제가 계속 어려워지면서 제대로 된 직장에서 제대로 된 월급을 받는 젊은이들을 제외한 많은 일본 젊은이들에겐 결혼도 사랑도 사치가 되었습니다. 혼수도 새 차도 고려대상 밖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으니 과외 선생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집에 대한 실수요도 점점 약해지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똑 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폐유통속도는 떨어지고 있고, 일자리의 질도, 출산율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계 부채가 너무 많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자산시장을 떠받치는 일도 이제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직은 제로금리가 아니고, 재정정책도 아주 조금은 더 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좀더 세게 또 길게: 양적 완화



양적완화를 촉구하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실패 원인을 일본이 양적완화를 좀더 세게 좀더 길게 하지 못했던 것에서 찾았습니다. 실질금리를 완전히 마이너스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효과가 미처 확인되기도 전인 2006년에 서둘러 양적완화를 끝냈다는 것이죠. 이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영국과 EU와 미국은 2%로 되어 있는 목표 인플레이션을 높여서라도 확실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양적완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문을 넣습니다. 즉, 불안한 사람들이 돈을 움켜쥐는 탓에 화폐유통속도가 줄어들어 생기는 효과를 완전히 상쇄할 만큼 많은 돈을 지속적으로 풀어 모든 사람들이 두 손 다 들고 물가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기대를 (inflation expectation) 하도록 하자는 것이죠.

이 주장을 달리 말하면, “자산가이자 빚쟁이인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손해 볼 수 없다”는 선언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말이죠.



맺으며

선진국 경제는 우리와는 달리 이제 대부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죠. 이제 남은 카드는 돈을 찍어 대는 양적완화 정도입니다. 앞서 보신 바와 같이 자산가들과 빚쟁이들은 양적완화를 확실하게 세게 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리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도 알고보면 엄청난 빚을(공공부채) 지고 있는 가장 큰 빚쟁이 들이죠. 섬뜩 하신가요? 양적완화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이와 같이 첨예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나와 내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죠.

미국서 세 번 째 양적 완화 정책이 이번 주 중반에 나올지도 모릅니다. 주식시장은 아마도 열광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양적 완화 정책이 효과가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미 양적완화의 효과는 점점 줄어 들고 있죠. (아래 그래프를 참고하십시오.) 어쩌면 양적 완화 보다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주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빠른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더운 여름에도 사람들은 일자리와 복지에 대해서 또 재벌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것이죠. 일본인들이 서양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면서 그들 멋대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 경제는 경세제민 즉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을 경영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경제”를 살릴지 “South Korean Economy” 를 살릴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아래 두 자료를 주로 참고했습니다.
“QE, or not QE?”, The Economist, July 14, 2012
“Accounting for the Decline in the Velocity of Money in the Japanese Economy”, Institute for Monetary and Economic Studies, Bank of Japan, July 2011

2012년 6월 5일 화요일

장하준 vs. 박정희 vs. 한국경제신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vs. 박정희 vs. 한국경제신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세계경제가 요동친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메르켈 같은 스타 정치인이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해법은 사실상의 유럽합중국을 의미하는 재정 동맹과 유로본드의 발행이다. 막대한 부가 유로존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는 대신에 국가의 재정 주권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마치 독일이 돈으로 온 유럽을 점령해 버리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정치적 합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각설하고, 왜 이런 위기가 해마다 반복되는지 이젠 잘 모르겠다. 어지럽다. 누구는 잘못된 정부 정책 탓이라 한다. 필자가 열독하는 한국경제신문이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긴축 대신 돈을 풀고 재정지출을 늘리다 결국 이 지경이 되고 말았는데”
똑같은 방식을 동원하자는 것이다.
더 큰 거품으로 작은 거품을 덮어보자는 악마의 유혹인 셈이다.
소위 케인스 중독인 셈이다.

사설: 세계경제 살벌한 단어들만 춤을 추고
한국경제신문 2012. 06. 03.


2008
년 금융 위기 당시, 마땅히 정부지출을 줄여 긴축을 했어야 했는데, 정부가 반대로 움직여 이런 위기가 다시 지금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지금도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같은 신문의 올해 초 논설이다.

바보들은 정치의 실패를 언제나 시장의 실패라고 우기고 있다.
학자 관료 정치가 등 땀흘리지 않는 자들이 그것에 앞장선다.
“상인 계급”의 작은 비리들을 들추어 내는 것이 이들의 주특기다.
지식 계급의 진화적 본능이기도 할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 중앙은행(Fed)의 무분별한 통화공급이 원인이었지만”
소위 ‘배운 바보’들은 드러난 결과와 숨겨진 원인을 혼동한다.
국가가 거품을 만들어 낸 다음에야 구더기처럼 투기꾼이 들끓게 되지만
이들은 거꾸로 말한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줄수록
바보들은 짜증을 낸다.
시장경제에 대한 반감도 이와 유사하다.
“부패는 시장의 부족에서 생기지만 이들은 시장의 과잉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규재 논설실장 칼럼: 전두환 키즈들의 헌법 제119조 2항
한국경제신문 2012. 01. 30.

분명해졌다. 한국경제신문은 2008년의 금융위기도 결국은 정부의 실패라고 규정한다.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이 위기는 결국 정부의 실패로부터 시작되었고,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지금도 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시장은 부패 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오직 정부가 그릇된 판단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장 만능주의이며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적으로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로 보는 편이 옳겠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히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정부의 실패: 지나친 통화 공급 →
투기 조장  →
2008년 금융위기 →
정부의 실패: 긴축과 구조조정 대신 방만한 재정운영 →
현재 경제 위기  →
정부의 실패: 긴축과 구조조정 대신 방만한 재정운영 →
경제 위기 지속
 


세계경제 흐름을 읽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읽는 3대 경제 신문을 꼽자면,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 월스트리트저널 (The Wall Street Journal), 파이낸셜타임즈 (Financial Times) 정도가 될 것이다. 모두 영어로 되어 있고,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행된다. 매일, 매주 참신한 소식들이 넘치지만, 모두 예외 없이 차갑고 보수적이다. 개별 기업과 사업 환경에 주목하는 경영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면 매월 발행되는 Harvard Business Review를 봐야 한다. HBR은 그나마 좀 더 개방적이며 학구적이다. 혁신에 목말라하는 기업가들이 열독하는 잡지다 보니 좀 더 유연할 탓일게다. 하지만 HBR의 근본은 역시 3대 경제신문과 다르지 않다. 보수적이다. 또, 어떻게 더 많은 것을 기업활동을 통해 얻어 낼 것인가를 치열하게 궁리한다.

올해 초까지, 이들 매체에서 현재 자본주의 운영 방식에 문제점이 상당하다는 주장을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문맥을 고려해서 한글 번역에 살을 좀 붙였다.

“자본주의에 대한 최대 위협은 기업 경영과 투자에 있어 단기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단기적인 접근이란 매 분기마다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이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이 사용되는 자본주의 운영방식을 말하며 이는 파국 직전까지 내몰렸던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영방식은 지금도 건재하다.”

“… the biggest danger to capitalism is that short-term approaches to running and invest in companies - the “quarterly capitalism” responsible for the near-meltdown of the financial system - still reign.”
Capitalism for the Long Term, HBR Mar, 2011 p. 87


“자본주의는 이미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른 수건까지 짜내는 것(ROE)에 대한 집착적 추구” 그리고 “경쟁을 사수하려는 결연한 각오"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ROE와 경쟁 모두 자본주의적 거래 질서의 건전함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과거에 기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지표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우선적 가치를 왜곡할 정도로 경제 여건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Capitalism’s equivalents are its obsessive pursuit of return on equity and its determination to preserve competition. Both began as valid proxies for healthy trade, but conditions have changed to the extent that those proxies now misdirect our priorities.”

Runaway Capitalism, HBR, Jan. - Feb. 2012, p. 69
 


“그 결과는 단기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다. 기업 수익에 대한 분기 보고서를 예로 들자. 삼개월은 어떤 사업을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너무 잦은 수익 보고는 최고경영자들로 하여금 장기적인 계획에 금이 가던 말던 금융자본이 제시한 분기 목표를 달성하는데 온 힘을 쏟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 the result is an excessive focus on short-term targets. Take the quarterly reporting of corporate earnings. Three months is too short a period on which to assess a business. Worse still, such frequent reporting has forced bosses to focus on “beating the numbers” at an expense of long-term planning.”
Short-Changed, The Economist, March 3rd 2012


이들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2008년의 금융 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운영 방식에 내재된 문제이다. 그 핵심은 기업 경영이 단기 목표 달성에 너무나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분기 손익이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몇 년, 몇 십 년을 내다보고 사업을 추진하지 못한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려면 초기에 투자가 필요한데, 바로 이 투자가 당장의 손익을 악화시켜 단기 목표 달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오랜 동안 회사에서 직무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직원을 해고하고, 사람을 덜 뽑기도 한다. 이른바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시행되는 이런 조치는 기업의 중장기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월스트리트는 열광한다. 주가는 오르고, 최고경영자는 자리를 지키며, 보너스를 챙기고 스톡옵션을 행사한다. 힘 없는 납품업체의 팔을 비트는 것도 같은 원리다.


결과, 큰 기업의 이익은 늘어나고 월스트리트는 천문학적인 돈을 챙겼다. 물론, 우리도 돈을 챙겼다. 퇴직연금은 불어났고, 펀드로 재미를 봤다. 모든 것이 좋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꽃을 피우기 시작한 이런 흐름을 정치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또, 금융자본이 기업들을 지배한다는 의미로 금융자본주의라는 말을 경제학자들은 사용하며 경영학자들은 기업에 돈을 댄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섬겨야 하는 체제라는 뜻으로 주주가치자본주의(shareholder value capitalism)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체제는 2008년 금융위기로 생명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 앞서 인용한 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장하준 교수는 그의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동일한 주장을 펼친다. 금융자본주의 혹은 주주가치자본주의의 조종이 울렸다고 잘라 말한다. 금융자본, 특히 외국 금융자본의 폐해가 막심하다기 때문에 금융산업과 국가간 자본이동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해서 강력한 산업정책을 펴야 우리 나라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또, 국제 금융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재벌과 우리 사회 사이의 대타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경제 목표는 “복지"라고 주장한다. 복지야말로 경제가 효율적으로 조정되며 업그레이드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규제 및 정부 개입


규제가 필요할까? 정부 개입이 필요할까? 어려운 문제다. 본래 자본주의는 무정부주의와 내부 독재로 규율되는 사기업의 조합이다. 정부의 개입은 필요도 없고 비효율과 부정부패를 조장한다는 기본 사상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고, 한국경제신문의 논조도 그렇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 가서 판단 근거를 찾아 보자. 2001년 여름 대형 회계부정사건이 터졌다. 매출액 백 수십 조원의 거대기업 Enron의 대규모 장부조작이 밝혀진 것이다. 장부 조작의 대가로 누군가는 엄청난 금전적 이익을 누렸고 회사는 파산했고 투자자와 종업원은 투자 원금과 퇴직금을 날렸다. 그 결과 제정된 법이 참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Sarbane-Oxley Act 이다. 기업의 회계를 규율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좀 더 강한 법규정을 정하고 규제에 나선 것이다. 이 법이 요구하는 보고서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상당한 금액을 기업들은 추가로 써야 한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고 비효율이며 골치 아픈 간섭이다. 그래서 그들을 끊임 없이 법 개정 또는 폐지를 요구한다. 추가 비용 탓에 미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없어진다는 이유를 대며 정부는 개입하지 말라는 주문한다. 


몇 년 뒤로 가 보자. 닷컴 버블 붕괴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그린스펀은 엄청난 돈을 이미 풀었다. 금리를 낮춘 것이다. 정부는 사람들의 주택 구입을 장려하면서 대출서류 심사를 덜 까다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줬다. 규제 수준을 완화한 것이다. 낮은 금리를 등에 업고 이전에는 집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도 집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집값은 오르기 시작했다. 집값은 계속 올랐고 사람들은 지갑을 열었다. 경제는 잘 굴러갔다. 게다가 끈질긴 금융계의 로비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금지하던 법을 폐지해 버린다. 규제 완화다. 정부가 개입을 덜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투자은행은 굴릴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좋은 점이 있지만, 투자 손실이 이제는 쉽게 금융산업 전반에 파급될 수 있는 체제로 바뀌는 단점이 생겼다. 하지만 좋다. 문제가 아직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린스펀은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레버리지 규제를 풀어버린다. 그 시대가 요구했던. 또 다른 규제 완화다. 이제는 몇 천억 자본금으로 수 십조 원을 빌려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투자은행은 이젠 정말 공룡처럼 커져버렸다. 이제부턴 많이 먹어야 한다. 새로운 먹이가 필요했다.



 

금융상품을 만드는데 아무런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없었던 미국에서는 주택 담보 대출(mortgage)을 기초자산으로 새로운 증권(MBS)이 만들어진다. 집주인으로부터 주택 담보 대출 원리금을 받을 권리를 묶어 종이에다 그 권리 내용을 적고 그 종이를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성은 계속 발휘되었다. MBS를 기초자산으로 부채담보부증권(CDO)라는 요상한 이름의 증권이 만들어졌다. 이 증권의 특징은 부도 위험에 따라 묶음을 나눴다는 점이다. Trenching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으로 각각의 묶음에는 높고 낮은 신용등급이 부여된다. 신용평가사가 등장한다. 문제는 복잡성. 너무 많은 가공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이미 CDO의 상품 설명서는 3,000 페이지가 넘게 된다. 누구도 설명서를 읽지 않았다. 읽어도 이해 불가다. 신용평가사의 직원도 마찬가지. 읽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동창의 요구와 보스의 지시에 따라, AAA 등급을 CDO에 매겼다.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과 같은 최고 등급이다. 투자자들에게 미국 국채와 똑같은 등급을 받은 “안전한" 투자 상품이 미국 국채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준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들은 열광했고, 돈이 몰렸으며 결국 그 돈은 주택시장으로 흘러갔다.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줄 만큼 모든 것이 좋았다. 그리고, 월 스트리는 CDO를 기초자산으로 CDO 스퀘어를 만든다. CDO를 만들 때와 과정은 같다. 상품 설명서는 더 길어졌지만, 상관없다. AAA 등급을 받을 수 있으므로. 도덕적 해이라고 다소 중화되어 표현되는 부정부패다. 누군가는 돈을 챙겼다.






모든 사람이 집을 사버렸다. 게다가 금리가 올랐다. 어쩔 수 없이,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7년의 일이다. 애당초, 집을 살 형편이 못되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집을 포기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집값이 오르면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도 모기지 갈아타기(refinance)로 목돈도 만지며 부족을 메울 수 있었지만, 이젠 끝이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MBS가 또 CDO가 또 CDO 스퀘어가 불안해졌다. 그런데, 누가 얼마만큼 손해를 봐야 하는지 누구도 계산할 수 없었다. 너무 복잡했다.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졌고, 사람들이 투자하지 않게 되면서 돈줄은 마르고,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기에 이른다. 



정부가 개입했다. 응급조치를 해야 했다. 양적완화 (QE)라는 이름으로 중앙은행에서 돈을 찍어 금융기관에 황급히 송금했다. 금융기관이 망하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0년 여름 또 다른 규제 법안이 만들어진다. Dodd-Frank Act. 이 법의 정식 명칭은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 보호 법이다. 이 법에 대해 오바마는 “우리가 막 겪은 금융위기를 절대 다시 겪지 않도록(from ever happening again) 막아줄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지금도 849페이지짜리 이 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한다면서 법안 폐지를 주장한다. 미국은 규제가 너무 많다며 불평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는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 개입이 비효율과 부정부패를 양산하기 때문이란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장하준  vs. 박정희 vs. 한국경제신문

장하준 교수의 주장대로 금융산업을 규제해야 할까? 달러를 많이 벌어오는 기업과 전략 산업에 돈과 특혜를 몰아주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정부가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펴야 할까? 아니면, 한국경제신문의 주장대로 아무 죄 없는 시장을 정부 규제의 족쇄로부터 풀어 건강하게 작동하기를 바랄 것인가?

복지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필수 조건일까? 아니면 망국으로 가는 급행열차표일까? 멕시코 수준의 우리나라 복지비 지출은 적정할까? “식코”의 나라 미국 수준으로는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은 북구 유럽의 나라들처럼 복지와 경제가 잘 조화된 나라로 우리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복지비를 아예 더 줄여서, 모든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도록 해야 할까?

황달 증상의 원인은 크게 보아 수 십 가지가 된다. 의사들의 의견이 갈렸다. 한 그룹은 더 이상 간이 작동하지 않으니, 간 이식이 제일 좋고 일단 급한 대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 나머지 의사들은, 간 기능에 본질적인 문제는 없고 불필요한 투약과 억제된 식습관이 문제라며 의사들이 환자를 내버려 두면 자연히 낫게 될 것이라 한다. 황달의 원인에 대한 평가가 다른 탓이다.

장하준과 한국경제신문의 서로 다른 주장도 이와 같다. 우리가 지금 겪는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어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서로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처방도 완전히 다르다. 이제, 어떤 처방이든 선택될 것이다. 어떤 처방이 최선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와 우리 자손 모두의 몫이다.

어서 황달에서 벗어나, 맑고 하얀 눈과 밝은 낯빛을 회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