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8일 토요일

장기적 관점이 왜 필요한가?

2007년부터 미국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꺼지지 않는 유럽의 재정위기 그리고 결국은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된 중동의 정정불안을 겪으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왈가왈부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시는 분들부터 자본주의 체제 자체는 인정하지만 제도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는 분들 또는 제도를 더 강화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목적을 달성 할 수 없으니, 엘리트들이 올바른 판단력(practical wisdom)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쳐 여전히 그냥 놔두면 된다는 신자유주의적 자유방임주의자 여러분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스팩트럼이죠.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멕킨지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얼마 전 읽은 글을 요약해 봤습니다.

단기주의(short-termism)과 싸워라!

미국서 1995년 당시 CEO의 평균 재임기간이 10년 정도였지만 이제는 6년 남짓 됩니다. 이렇게 CEO들이 단명하다 보니 장차 10 15년을 바라보고 지금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CEO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기의 명을 단축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를 들죠. 1990년대 현대 자동차는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타는 품질 문제가 많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1999년 현대자동차는 전례가 없는 10년 엔진 및 동력전달부 보증 (10-year power train warranty) 정책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대부분 여타 자동차 회사의 보증 기간이 1-2년 정도였을 때였죠. 모두들 우려의 시각으로 봤습니다. 언제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였죠. 10 20년이 걸리더라도 정말 성공해야겠다는 장기적 안목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모험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삼 년 만에 미국 판매량 네 배가 되었고 이후로도 미국 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혔습니다.




주주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에는 미국 주식의 평균 보유 기간이 무려 7년이었지만 지금은 7개월 정도 되죠. 투자기간이 짧다는 것은 CEO가 장기 성과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투자할 수 있도록 주주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 분기 또는 반기 성과가 좋지 않은 CEO는 해고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죠. 해고 압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CEO는 직원을 해고하고, 돈 많이 드는 장기 연구 개발을 중단시키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손쉽게 당기순이익을 크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이런 근시안적 병폐는 회사의 가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 중에 현재 또는 앞으로 한두 해의 단기 현금 흐름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절대적인 영향력은 삼 년 이후의 장기 현금 흐름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장은 큰 돈을 벌지만 삼 년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어떤 기업보다는 확실한 장기 사업 모델을 가지고 매일 노력하는 기업의 가치가 더 크게 평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기도 하고 수 많은 연구성과를 통해서도 검증된 것이죠.

전세계 금융자산의 35% 정도가 되는 65조 달러를 연기금, 보험사, 뮤츄얼펀드 그리고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이 돈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시장수익률(performance of benchmark index)과 자신의 운용수익률을 비교하는 형태로 평가 받습니다. 예를 들어, 평가 기간 중 코스피가 12% 올랐는데 자신의 운용수익률이 10%인 메니저들은 옷 벗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이런 판단은 10%라는 수익률 자체는 물론 대단하지만, 포트폴리오만 제대로 만들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12%는 얻을 수 있었다는 논리에 근거합니다. 이러한 평가 관행은 장기투자 주주의 입장에서 투자한 회사가 잘 되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 보다는 단기 급등 주식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만이 살아남도록 하죠. 따라서, 이런 단기주의 관행을 탈피해서, 이런 큰 자본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업에 투자하고 기업이 더 잘 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었죠.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의 5%, 현대자동차의 5.95%, 포스코의 5.43%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치 문제일 수 있으니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맥락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정치논리를 떠나 잘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해관계자(stakeholders)를 잘 섬겨서 주주를 부유하게 하라!

70-80년대의 화두는 주주가치극대화(shareholder value maximization) 였죠. 이제는 종업원, 공급자, 고객, 채권자, 지역사회 그리고 환경을 모두 포함하는 이해관계자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기업의 장기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모든 기업이 착한 기업, 국민들이 사랑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이 명제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근거합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같은 이치로 어떤 구성원이 그릇된 행동을 하면 다른 구성원이 다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작년 말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기한 ‘Shared Value’라는 개념도 경제와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도 모두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예를 좀 들어 보죠. 2008년 미국의 거대 통신사 Verizon은 노인들과 장애우들을 위한 전용 전화기와 아주 저렴한 요금제를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40만대의 전용 단말기를 팔았고, 노인들의 휴대전화 지출이 두 배로 늘었죠. 그 동안 소외되었던 계층이 이동 전화 서비스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GE는 인도나 중국 같은 저개발 국가의 저소득층도 CT MRI 같은 의료 이미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초저가 이미징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새롭게 얻은 기술로 기존 hi-end 제품의 효율을 크게 개선시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착한 일을 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운영 효율을 높이고 직원의 이직률을 낮추며 혁신을 촉진하고 회사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이득을 얻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움직임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피상적 수준에서 더 심화 발전될 경제적 동인(incentive)가 현재로서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업들이 그런 시늉만 또는 말로만 그렇게 하는 선에서 그치기 쉽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가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비로소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SNS가 그 변화를 촉진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인처럼 행동하라!

음식점에서 사장이 없는 동안에 건성으로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을 보면서 주인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식당뿐 아니라, 큰 기업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험한 파생상품에 너무나 많은 돈을 투자해서 결국은 망해버린 메릴린치입니다. 이사회가 그 험한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너무 늦어 어찌 손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주인이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비극을 기업 지배구조의 실패라고 규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주식이 너무나 분산되어서 어느 한 주주가 책임을 지고 회사 정책을 좌우 할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 CEO는 투자자들이나 대중매체들과 같은 단기주의적 시각을 지닌 이들의 말을 듣게 되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바로 소유에 근거한 기업지배구조 (ownership-based corporate governance)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기업은 상당한 지분을 가진 장기투자성향의 대주주가 있고 이외 지분이 주식시장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 형태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이런 형태죠.

여하튼, 소유에 근거한 기업지배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주인처럼 이사회가 행동할 것, CEO에 대한 보상을 장기성과와 연동시킬 것 그리고, 1 1표제로 요약되는 주주민주주의를 재해석 해서, 주식 보유기간이 긴 주식에 대해 더욱 많은 의결권을 주는 등등의 제도를 도입 하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년 이상 보유한 주권에 대해서 일 주당 표 두 개를 주는 제도가 이미 상당 수 기업에서 시행되고 있고, 구글도 현 경영층이 가진 주식의 주당 의결권이 일반주주들이 가진 주식의 주당 의결권보다 훨씬 크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적절히 대응하는 편이 그렇지 못한 경우 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다만,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그런 큰 맥락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제일 위험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 정체상태가 계속되고 사람들이 스스로 믿는 바를 버리지 못하고 지식과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죠.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시간이 아주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Harvard Business Review Mar. 2011, Capitalism for the Long Term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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