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1일 화요일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입니만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진정성인듯합니다. 진정으로 일을 해야 일이 빛이 나고 그 결과를 보는 사람이 오랜 동안 감동하게 되죠. 글로써 또 가르침으로 그런 감동을 주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선생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고 그래서 기쁜 일이죠. 제가 크리스탠슨 하버드 경영대학 석좌교수의 글을 태어나서 처음 읽은 때가 재작년입니다. 그분의 글을 처음 읽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명쾌한 무언가를 직구로 확실히 받은 느낌. 그리고는 수업시간에 그 분 글을 인용해서 발표한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크리스탠슨 교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재직하시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는 한 해 900명의 수재를 세계 각지에서 선발합니다. 그 학교에서 2010년 봄에 졸업하는 갓 “주조된“ MBA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생 훈수를 해 달라고 조른 사람이 바로 크리스탠슨 교수죠. 이 요청에 화답해서 크리스탠슨 교수는 졸업생들에게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글로 출판되죠. 제목은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 입니다.

크리스탠슨 교수는 다음 세 가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l How can I be sure that I’ll be happy in my career? 직업에서의 행복

l How can I be sure that my relationships with my spouse and my family become an enduring source of happiness? 지속적 행복의 원천으로서의 가족

l How can I be sure I’ll stay out of jail? 감옥에 가지 않기

크리스텐슨 교수는 직업에서의 행복에 대한 답을 하면서 아주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경영자 또는 관리자로서 조직과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전문직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라는 것이죠. 물론 잘 할 경우에 한한다는 단서를 잊지 않았습니다만 그 일이 고귀한 이유는 다른 사람을 다양한 방법으로 육성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에 대한 정의에 따른다면, 그가 말한 육성 (help others learn and grow) 은 사실상 ‘사랑’과 동의어입니다. 즉,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들에게 ‘잘난척하며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말고 부하와 동료를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직업의 만족을 찾아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주옥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만, 스포일링이 될까 적지 않았습니다.

“Management is the most noble of professions if it’s practiced well. No other occupation offers as many ways to help others learn and grow, take responsibility and be recognized for achievement, and contribute to the success of a team."    from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

크리스텐슨 교수의 말을 들어 보면 어딘가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데요. 사실 그는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그의 글에도 물론 그런 표현들이 있고, 젋은 시절 그는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또 몰몬교로 알려진 교단의 선교사로 1971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머리 좋은 그는 지금까지도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죠. 아래 사진 속 어린이 중 한 명이 저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은 참 큰 행복입니다. 크리스텐슨 교수를 만나보진 못했지만, 좋아할 만한 존경할 만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팬이 되었습니다.

2011년 5월 28일 토요일

장기적 관점이 왜 필요한가?

2007년부터 미국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꺼지지 않는 유럽의 재정위기 그리고 결국은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된 중동의 정정불안을 겪으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왈가왈부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시는 분들부터 자본주의 체제 자체는 인정하지만 제도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는 분들 또는 제도를 더 강화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목적을 달성 할 수 없으니, 엘리트들이 올바른 판단력(practical wisdom)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쳐 여전히 그냥 놔두면 된다는 신자유주의적 자유방임주의자 여러분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스팩트럼이죠.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멕킨지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얼마 전 읽은 글을 요약해 봤습니다.

단기주의(short-termism)과 싸워라!

미국서 1995년 당시 CEO의 평균 재임기간이 10년 정도였지만 이제는 6년 남짓 됩니다. 이렇게 CEO들이 단명하다 보니 장차 10 15년을 바라보고 지금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CEO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기의 명을 단축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를 들죠. 1990년대 현대 자동차는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타는 품질 문제가 많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1999년 현대자동차는 전례가 없는 10년 엔진 및 동력전달부 보증 (10-year power train warranty) 정책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대부분 여타 자동차 회사의 보증 기간이 1-2년 정도였을 때였죠. 모두들 우려의 시각으로 봤습니다. 언제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였죠. 10 20년이 걸리더라도 정말 성공해야겠다는 장기적 안목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모험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삼 년 만에 미국 판매량 네 배가 되었고 이후로도 미국 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혔습니다.




주주들이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에는 미국 주식의 평균 보유 기간이 무려 7년이었지만 지금은 7개월 정도 되죠. 투자기간이 짧다는 것은 CEO가 장기 성과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투자할 수 있도록 주주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 분기 또는 반기 성과가 좋지 않은 CEO는 해고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죠. 해고 압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CEO는 직원을 해고하고, 돈 많이 드는 장기 연구 개발을 중단시키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손쉽게 당기순이익을 크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이런 근시안적 병폐는 회사의 가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 중에 현재 또는 앞으로 한두 해의 단기 현금 흐름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절대적인 영향력은 삼 년 이후의 장기 현금 흐름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장은 큰 돈을 벌지만 삼 년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어떤 기업보다는 확실한 장기 사업 모델을 가지고 매일 노력하는 기업의 가치가 더 크게 평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기도 하고 수 많은 연구성과를 통해서도 검증된 것이죠.

전세계 금융자산의 35% 정도가 되는 65조 달러를 연기금, 보험사, 뮤츄얼펀드 그리고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이 돈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시장수익률(performance of benchmark index)과 자신의 운용수익률을 비교하는 형태로 평가 받습니다. 예를 들어, 평가 기간 중 코스피가 12% 올랐는데 자신의 운용수익률이 10%인 메니저들은 옷 벗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이런 판단은 10%라는 수익률 자체는 물론 대단하지만, 포트폴리오만 제대로 만들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12%는 얻을 수 있었다는 논리에 근거합니다. 이러한 평가 관행은 장기투자 주주의 입장에서 투자한 회사가 잘 되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 보다는 단기 급등 주식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만이 살아남도록 하죠. 따라서, 이런 단기주의 관행을 탈피해서, 이런 큰 자본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업에 투자하고 기업이 더 잘 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었죠.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의 5%, 현대자동차의 5.95%, 포스코의 5.43%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치 문제일 수 있으니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맥락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정치논리를 떠나 잘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해관계자(stakeholders)를 잘 섬겨서 주주를 부유하게 하라!

70-80년대의 화두는 주주가치극대화(shareholder value maximization) 였죠. 이제는 종업원, 공급자, 고객, 채권자, 지역사회 그리고 환경을 모두 포함하는 이해관계자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기업의 장기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모든 기업이 착한 기업, 국민들이 사랑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이 명제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근거합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같은 이치로 어떤 구성원이 그릇된 행동을 하면 다른 구성원이 다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작년 말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기한 ‘Shared Value’라는 개념도 경제와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도 모두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예를 좀 들어 보죠. 2008년 미국의 거대 통신사 Verizon은 노인들과 장애우들을 위한 전용 전화기와 아주 저렴한 요금제를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40만대의 전용 단말기를 팔았고, 노인들의 휴대전화 지출이 두 배로 늘었죠. 그 동안 소외되었던 계층이 이동 전화 서비스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GE는 인도나 중국 같은 저개발 국가의 저소득층도 CT MRI 같은 의료 이미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초저가 이미징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새롭게 얻은 기술로 기존 hi-end 제품의 효율을 크게 개선시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착한 일을 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운영 효율을 높이고 직원의 이직률을 낮추며 혁신을 촉진하고 회사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이득을 얻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움직임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피상적 수준에서 더 심화 발전될 경제적 동인(incentive)가 현재로서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업들이 그런 시늉만 또는 말로만 그렇게 하는 선에서 그치기 쉽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가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비로소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SNS가 그 변화를 촉진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인처럼 행동하라!

음식점에서 사장이 없는 동안에 건성으로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을 보면서 주인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식당뿐 아니라, 큰 기업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험한 파생상품에 너무나 많은 돈을 투자해서 결국은 망해버린 메릴린치입니다. 이사회가 그 험한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너무 늦어 어찌 손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주인이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비극을 기업 지배구조의 실패라고 규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주식이 너무나 분산되어서 어느 한 주주가 책임을 지고 회사 정책을 좌우 할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 CEO는 투자자들이나 대중매체들과 같은 단기주의적 시각을 지닌 이들의 말을 듣게 되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바로 소유에 근거한 기업지배구조 (ownership-based corporate governance)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기업은 상당한 지분을 가진 장기투자성향의 대주주가 있고 이외 지분이 주식시장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 형태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이런 형태죠.

여하튼, 소유에 근거한 기업지배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주인처럼 이사회가 행동할 것, CEO에 대한 보상을 장기성과와 연동시킬 것 그리고, 1 1표제로 요약되는 주주민주주의를 재해석 해서, 주식 보유기간이 긴 주식에 대해 더욱 많은 의결권을 주는 등등의 제도를 도입 하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년 이상 보유한 주권에 대해서 일 주당 표 두 개를 주는 제도가 이미 상당 수 기업에서 시행되고 있고, 구글도 현 경영층이 가진 주식의 주당 의결권이 일반주주들이 가진 주식의 주당 의결권보다 훨씬 크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적절히 대응하는 편이 그렇지 못한 경우 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다만,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그런 큰 맥락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제일 위험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 정체상태가 계속되고 사람들이 스스로 믿는 바를 버리지 못하고 지식과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죠.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시간이 아주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Harvard Business Review Mar. 2011, Capitalism for the Long Term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2011년 5월 10일 화요일

왜 혁신은 어려운 것일까?

거의 모든 회사들이 혁신을 표방합니다. 겉으로만 그런 경우도 종종 있지만 사실 간절히 혁신을 원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 많은 회사들 중에 혁신을 일으키고 혁신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는 회사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회사가 혁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일단 상식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죠. 회사의 규정과 부서간의 업무 분장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함으로써 업무 효율을 꾀하는 관료주의(bureaucracy)를 들 수 있습니다. 기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최적화되어 설계된 관료주의가 일단 굳어지면 변화와 혁신을 방해하는 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기존의 성공에 도취되어 자만(arrogance)에 빠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을 게을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경영층의 도전정신이 노쇠해 버렸거나 (tired executive blood)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이 결여되는 집단 근시안 (executive myopia)에 빠진 경우도 혁신이 어려워집니다. 경영층이 혁신 경로를 잘 설정하였음에도 제대로 된 계획을 가지고 집행되지 못하는 경우(poor planning) 나 투자 즉시 이익을 누리려는 조급증 (short-term investment horizons)도 경계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식적인 혁신 저해 요소들과 끊임 없이 싸워가며 혁신을 추구한 많은 기업들이 결국 의미 있는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동력이 소진되어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업계에서 사라집니다. 결국 앞서 살펴본 상식적인 이유들 이외에 뭔가 다른 이유들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토마스 새뮤얼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제시된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적이고 불연속적인 기술혁신의 측면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Joseph L. Bower 과 Clayton M. Christensen이 그들인데요, 이젠 경영학 고전이 된 그들의 작품을 얼마 전 우연히 읽었습니다. 사실 토마스 쿤의 통찰력을 빌려와 경영학을 절묘하게 덧칠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클래이톤 교수을 스타로 만들었죠. 저도 팬 중에 하나입니다.




Source: http://www.claytonchristensen.com/

이들은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기존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기술을 무력화시키면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 버리는 기술을 의미하는데, 기존 시장에도 기존 시장에서 잘 나가던 공급자들에게도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disruptive 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죠. 예를 들겠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땅을 파는 굴삭기(excavator)를 생각해 보시죠, 요즘은 반짝거리는 은색 봉이 있는 유압식(hydraulic) 굴삭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 십 년 전인 1950~60년대만 해도 디젤 엔진을 돌려서 쇠줄을 끌어 당겨 땅을 파는 Power Shovel (사진)이 대세였죠. 유압식 굴삭기는 천덕꾸러기였습니다.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의 힘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압을 이용한 기계를 만드는 원리는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이 이미 세상에 알렸지만, 그 원리가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인 기계가 되는 데 수 백 년이 걸렸던 것입니다. Power Shovel 입장에서는 유압 굴삭기는 disruptive technology인 것입니다. Power Shovel을 만들던 수 많은 회사들이 망했고, 초대형 굴삭기 등을 제외하고는 Power Shovel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Source: Wikipedia

자,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시계를 1950년대의 어느 날로 맞추고 장소를 미국의 한 회사로 떠나 봅시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Power Shovel 시장 세계 1위인 어떤 업체의 임원들이라고 생각해 보시죠. 여러분들이 보는 세계와 굴삭기 시장은 어떠할까요? 굴삭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의 임원인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 점유율은 안정적이고 시장규모는 커지고 있죠. 전승국 미국의 좋았던 사회분위기만큼이나 모든 것이 좋아 보입니다. 유압 실린더가 막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어린아이 장난감 같은 수준입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고참 연구소장이 유압 굴삭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제품이 개발될 확률도 극히 낮았고, 제품이 개발 된다 하더라도 시장성이 아예 없었습니다. 먼 앞날을 바라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책임질 만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마케팅과 재무를 담당한 임원들은 시장성과 투자지표를 들먹이며 예산 배정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여러분이 범한 실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별로 잘 못하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규정대로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죠. 따져 보겠습니다. 기존 기술이 있습니다. 기존 기술은 막강하죠. 새로운 기술도 여러분은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아직 미약합니다.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기존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즉, 기존기술 > 예상되는 신기술의 발전 수준 > 신기술의 현재 단계


이런 부등식이 머리 속에 그려지죠. 그러므로, “신기술은 열등한 기술이고 신경 쓸 필요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뭐 이런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부등식을 이렇게 바꿔 볼 수 있습니다.


즉, 기존기술 > 대형 굴삭기 시장의 요구 수준

그리고, 

예상되는 신기술의 발전 수준 > 중소형 굴삭기 시장의 요구 수준 > 신기술의 현재 단계


시장을 대형 굴삭기, 중소형 굴삭기로 나누어 보면, 여러분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바로 드러납니다. 즉, 시장을 보는 혜안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판단 했겠죠. “유압기술의 현재 개발 단계로는 중소형의 굴삭기도 만들 수 없지만, 조금만 더 개발하면 소형 굴삭기부터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중형 굴삭기도 머지 않아 만들 수 있다. 유압식 굴삭기는 컴팩트 할 뿐 아니라, 운영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에 일단 시장에만 진입할 수 있다면 기존 굴삭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완전히 다른 결론입니다.

간단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원리입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 추세를 잘 살피다가 앞으로 발전될 신 기술이 접근 가능한 기존 시장 또는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장이 포착된다면 베팅을 해도 좋다는 것이죠. 단, 주의할 점! 신기술을 기존기술과 단순히 비교하면 여러분께서 내리신 것과 같은 그릇된 결론을 얻습니다.

추가로, 몇 가지 고려할 내용입니다.

일단, 기존 회사의 합리적 관행으로는 disruptive technology의 가능성을 정당하게 평가해서 예산을 배정하고 사업화할 방법이 없습니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장의 소비자들이 아직 그 제품과 그 기술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새 프로젝트의 순현재가치(NPV)는 당연히 마이너스가 될 것이고, 어떤 CFO도 NPV가 음(-)인 프로젝트에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정기예금을 하겠죠! 따라서, disruptive technology의 파도에 올라 타려면 경영자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CFO와 COO가 반대해도 연구소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 그런 사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한가지. 시장조사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 이미 밝혀 드렸죠. 시장은 아직 그 기술을 모르고 있고, 또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시장 조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CFO와 COO가 내린 결론과 똑 같습니다.

덧붙여, disruptive technology는 새로운 소규모 조직에서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영업이나 일반관리 등의 overhead를 기존 조직과 공유하면 비용이 줄 것도 같지만 관료화된 기존 조직 자체도 문제이고, 계속 적자가 나거나 정말 아주 적은 이익만 나는 사업부가 기존의 공룡조직에서 계속 살아 남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죠. 아마도 조직 개편이 있을 때마다 그 사업부를 없애는 안건이 항상 1순위가 될 것 같습니다. 또, 아주 작은 조직에서 아주 작은 주문(order)에도 모든 사람이 성취감에 기뻐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어쩌면 그런 종류의 기술을 오랜 기간 개발해야 하는 개발자와 리스키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프로젝트 책임자가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최적으로 환경일지도 모릅니다. 사족으로, 제품 컨셉, 초도 생산량, 마케팅 비용 등등 모두 아주 작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Disruptive Technology의 사례는 무궁무진 하고,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데스크탑과 노트북과 피처폰을 대체해나가는 스마트패드와 스마트폰이죠. 작은 교훈이지만, 항상 장기 생존 해법을 고민하는 경영자 여러분들께서 참고하실 내용 같아 적었습니다.

참고: Disruptive Technologies: Catching the Wave, by Joseph L. Bower and Clayton M. Christensen, Harvard Business Review, Jan.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