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조직은 왜 무너지는가?
아르셀로미탈?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는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입니다. 2012년 전 세계 기업순위가 70위 정도인데, 2011년 포스코가 160위 정도 였으니, 정말 엄청난 규모의 회사입니다. 이 크디 큰 회사가 우리 귀에 다소 생소한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이름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죠. 2006년에 설립 되었으니 불과 6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회사입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깊죠. 백여 년이 넘은 유럽의 제철회사들 수십여 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회사라 그렇습니다.
철강산업은 규모가 커지면 생산 단가가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잘 적용되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철강 기업간 인수합병이 아주 빈번했습니다. 때로는 정부가 주도하기도 했고, 점점 경쟁이 격화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기업들이 연합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같은 나라 기업끼리 뭉치다 EU 역내 기업간의 합병이 이루어지고 이젠 EU 역외 기업과도 한 몸이 되는 소위 “글로벌 합병”이 일상화 되고 있습니다.
기업간 인수합병은 무척 험한 일입니다. 일 자체의 추진이 복잡할 뿐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 사람을 줄여야 하기도 하고 인수합병이 모두 끝난 다음에도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험한 일을 왜 자꾸만 할까요? 그것도 수십 번 반복해서 말이죠. 인수합병을 중개하는 투자은행의 부추김도 물론 있었겠지만, 답은 하나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죠. 유럽 철강 산업의 저 처절한 노력은 결국 자꾸 변하는 경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도 깊고, 덩치도 큰 철강산업의 모습이 저런데 다른 산업은 오죽 하겠습니까?
경영 환경의 변화
경영 환경의 변화는 항상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기후의 변화, 인구학적 변동, 전쟁, 새로운 기술의 출현, 자본 축적의 심화, 사회 경제 제도의 발전, 문화 등등의 모든 것이 한데 모여 경영환경이 만들어 지죠.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항상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먹고 살기가 팍팍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겁니다. 자꾸 변하는 환경에 맞춰서 몸을 움직여 적응하려고 사력을 다해야 하니까 그런 것이죠. 하지만 지나온 기십 년을 돌이켜 보면, 추세적으로 어제 보다는 오늘이 또 오늘 보다는 내일이 좀 더 팍팍해지고 있단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역시 그 이유는 “변화” 때문입니다. “경영 환경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고, 복잡해지고, 예측이 어려워졌죠. 너무나 그 정도가 심해져서, 이제는 “전문가”들의 말에 의존해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전문가” 들의 예측이 맞을 확률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죠. 또, 우리의 경험이나 육감으로만 기업을 경영할 수도 없습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는 지난 기간 우리가 축적한 “성공적인 경험”이 상당 부분 “이미” 쓸모 없어진 지 오랩니다. 따라서, 경험과 그 경험에 기반한 우리의 “통찰력”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는 “질곡”이 되죠. 결국 믿을게 없는 겁니다. 참 답답하죠. (요 말은 경상도 식으로 해야 재미납니다. 각자 속으로 한번씩 해 보시죠.)
더 답답한 것은, 이전에 잘 통했던, 예를 들어 무조건 낮에는 발로 뛰고 밤에는 야근한다는 류의 적응방식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우리 처지는 총 한 자루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족이지만, 이 상황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소위 전문가의 조언을 너무 믿는 분들이죠. 이 분들에겐 권총조차 단검조차 없지만, 몰려오는 적들을 향해 돌진하시곤 합니다. 너무 확신에 차 있으시죠. 이분들은 그런데, 보통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함께 끌고 가시기 때문에 정말 큰 민폐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바로 이 관점에서 매일 자신을 돌아봅니다.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돌아보기”를 뭐 그리 “비장감” 돋게 하지는 않습니다. ㅎㅎ
너무도 뻔한
팀 하포트 (Tim Harford)는 “왜 성공은 항상 실패로 시작하는 것인가”라는 친절한 부제를 달아 놓은 그의 책 어댑트(Adapt: Why Success Always Starts with Failure)에서 “적응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그의 방법론을 제 나름대로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시도 할 것 (trial)
처음부터 너무 크게 하지는 말 것 (experiment)
잘 다듬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 것을 고를 것 (selection)
어의 상실이고 멘탈 붕괴입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초등학교 교과서도 아니고 이런 뻔한 내용으로 책을 낸다니 말이죠. 그러나, 진정하고, 내친 김에 좀 더 간략히 요약해 볼까요? 글 쓰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그의 방법론을 더 간략히 줄여 보겠습니다.
시행착오법 (trial and error)
시행착오법은 수학적 방법론입니다. 해를 알지 못하는 체계에 임의의 숫자를 집어 넣습니다. 한 번 해보는 거죠. 바로 시도(trial) 입니다. 해를 알지 못하는 체계는 “변화되어 우리가 잘 모르는 새로운 경영환경” 쯤으로 볼 수 있죠. 첫 시도에 기적적으로 맞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틀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체계(system)은 그런 시도를 한 용감한 사람에게 조그만 선물을 해 줍니다. 바로 오차(error)의 크기죠. 이 “오차의 크기”는 현실세계에서는 목표와 성과의 차이(gap)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용감할 뿐 아니라 끈기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무모한 도전을 합니다. 다른 숫자를 넣어 보는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조그만 선물을 받습니다. 또 다른 오차의 크기입니다. 용감할 뿐 아니라, 끈기 있으며 현명하기까지 한 이 사람은, 이제 오차의 크기들을 비교해 가면서 다음에 어떤 숫자를 넣을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완전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근사한 숫자들을 찾을 수 있게 되죠. 기억하시나요? 고등학교 시절, 못 풀면 0, 1, -1 셋 중에 하나였다는 거?
수학적 방법론이니 방법론 자체가 틀렸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모든 조직이 이런 방법론을 잘 적용할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너무도 뻔한 이 방법론을 왜 우리는 적용하지 못할까요? 이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진짜 가치입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도대체 어떤 점이 잘못되어있는지 돌아보게 해 준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이 너무도 당연한 “시행착오법”을 잘 사용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조직의 장기 생존의 비법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깨우쳐 주려고 했던지, 팀 하포트는 유사한 사례를 지나치게 반복해서 책에 늘어 놓았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거슬렸던 부분입니다. 또, 한가지 더 지적한다면, 생물학적 진화 이론을 기계적으로 유추 적용했다는 점 또한 예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이런, 옆길로 샜군요. 다시 돌아가야죠.
가족 같은 조직은 왜 무너지는가?
아버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족을 머리에 떠올려 봅시다. 가족들이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 아버지가 결정합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아버지 친구가 아버지에게 이 모든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참고할 만한 전문적이고 자세한 조언을 해 줍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아버지의 결정이 내려지면,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꼭 해야 합니다. 사춘기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결정에 이견을 제시하면, 그것은 아버지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위험한 행동이 됩니다. 그리고, 성실하지 못하며 어려운 작업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이런 조직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겠냐고 볼멘소리를 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팀 하포트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과 미 국방성이 가장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또, 그 유명한 국방 장관 럼스펠트를 정점으로 미국이 이라크 전을 치를 때도 똑 같은 실패가 반복되었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속한 조직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지 점검해 보시죠.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의 정밀 분석을 통한 ‘큰 그림’ 도출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단합된 팀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명령 체계
이렇게 책을 시작한 하포트는 좀 더 적극적인 위험 감수 즉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과감하게 한 번 해 보는 조직만이 살아 남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드팩 루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전투 현장의 진실이 조직의 내부 깊숙이 또 최고 책임자에게 제대로 전달 될 수 있어야 그것으로부터 조직이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 조직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다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는 잘라 말하죠.
그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리가 다 익숙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주장의 연속이죠. 하지만 그의 이 뻔한 주장은 그가 책에 적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실감과 생명력을 얻습니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맺으며
스티브 잡스는 광적으로 인재를 찾았습니다. 그의 손발이 되어줄 특급 인재 (A players) 들로 팀을 꾸리고 자신이 아침에 거울을 보며 생각해낸 “이상향”을 제시했죠. 그리고, 특급 인재들이 제복을 입은 반듯한 해군 수병이 아니라 인도양을 누비는 해적들처럼 행동하도록 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무한히 마음껏 시도하게 허락한거죠. 우리 세대가 경험한 스티브 잡스의 유작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수 없는 mock-up이 쓰레기통으로 내 던져진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시제품을 잡스 자신과 그의 팀은 직접 사용하며 경험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거슬림도 수정해 나갔죠. 이렇게, 완벽한 경험을 만들고 그들은 그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Apple 입니다.
You will never know what you're good at until you try.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 드렸지만, 자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조직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수단과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그 순간 그 조직은 죽은 조직일 것입니다. 초 일류 기업이자 한 때 경영학계의 귀감이었던 ‘코닥’의 몰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만의 문화(culture of complacency)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당장 우리 조직을 점검해 볼 일입니다. 조금은 비장하게 말이죠.
다음 자료들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Tim Harford, Adapt: Why Success Always Starts with Failure, Farrar, Straus and Giroux, 2011, New York
이슈리포트 "유럽철강사, 본격적 구조조정에 돌입하나?", 2012. 9. 포스코 경영연구소
Walter Isaacson, Steve Jobs, Simon & Schuster, 2011
Adam Lashinsky, Inside Apple, John Murray, London, 2012